끝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더 깊어진다
비가 내렸다.
어느 때 같으면 ‘어쩌지?’ 하며 우산부터 찾았을 텐데,
그날은 달랐다.
‘그래, 한번 걸어보자.’
그렇게 팔라스 데 레이에서 아르수아까지 30km,
비 속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길은 진흙으로 미끄럽고, 발은 금세 젖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빗물이 땀과 섞여 흐르는데도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편안했다.
비를 피하지 않으니,
비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걷는다는 건
결국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는 걸
그날 비로소 알았다.
어떤 날은 햇살이 쏟아지고,
어떤 날은 비가 내리고,
어떤 날은 바람이 분다.
그 모든 날이 순례길의 일부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도 있었다.
젖은 신발을 벗고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다리를 주물러 주던 동행들,
비에 젖은 머리를 툭툭 털며 웃던 낯선 사람들.
“부엔 카미노(Buen Camino)”
그 한마디에 서로의 마음이 젖었다.
오후 다섯 시가 넘어
아르수아 마을의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피곤해서도, 다리가 아파서도 아니었다.
‘이제 끝이 가까워졌구나.’
그 생각이 마음을 울렸다.
걸을수록 나는 가벼워졌다.
육체는 지쳐가는데 마음은 오히려 단단해졌다.
비는 여전히 내렸지만
그 빗속에서 나는 오래도록 미소를 지었다.
“그래, 오늘도 잘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