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빌바오, 잠시 멈춤의 미학

걷기만 하던 여정 속, 쉼이 주는 또 다른 길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며칠째 이어진 순례의 길,

몸도 마음도 조금씩 피로가 쌓여가던 즈음이었다.
그날 일정은 유난히 달랐다.
“오늘은 걷지 않습니다. 잠시 멈춤의 시간이에요.”
가이드의 말에 모두가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곳은 스페인 북부, 빌바오(Bilbao).
한때 쇠락한 공업 도시였지만,
이제는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세계인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
쇳내 나는 항구의 도시가 예술의 도시로 다시 태어난 그곳에서,
나는 ‘쉼’이란 단어의 또 다른 의미를 배웠다.


아침부터 설렘이 있었다.
그날은 박물관 일정이 있다는 걸 알고,
나는 미리 챙겨 온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같이 여행 온 일행들은 놀란 눈치였다.
“트레킹 복장만 보던 사람이 갑자기 드레스를 입다니!”
웃음이 터졌고, 그날의 공기는 유난히 따뜻했다.


구겐하임 미술관 앞, 거대한 조형물 ‘스파이더’ 아래에서
나는 오랜만에 천천히 걷는 법을 배웠다.
순례길 내내 ‘앞만 보고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는 걸음을 멈추는 것도 하나의 여정이었다.


빛과 유리, 금속이 만들어내는 곡선의 아름다움.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웃음.
그 모든 게 예술처럼 느껴졌다.


미술관 안에서는 오래된 작품들 앞에 잠시 멈춰 섰다.
누군가의 삶, 시대의 흔적, 그 속에서 이어진 인간의 의지.
걸어온 길의 의미가 불현듯 겹쳐 보였다.
“아, 나도 내 삶의 작품을 만들며 걸어왔구나.”


그날 오후, 카페테라스에서 마신 커피 한 잔이
이토록 깊은 여운을 남길 줄은 몰랐다.
쉼이란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내 안의 소리를 다시 듣는 시간이었다는 걸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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