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낯섦이 조금씩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끝없이 이어지는 하늘,
푸른 들판과 작은 마을들,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과 나란히 걷다 보면
내 안의 불안이 서서히 풀려간다.
이제는 지친 얼굴 대신
활짝 웃고 있는 내 모습을 자주 발견한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걷는 일에 몰두하는 시간.
햇볕에 얼굴을 가리려 애쓰던 나는
어느새 그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배낭에는 젖은 양말이 매달려 있고,
발에는 굳은살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게 행복했다.
오늘도 길 위에서 여러 순례자들을 만났다.
각자 다른 나라, 다른 언어, 다른 사연을 품고 걷고 있었다.
어느 구간에서는 함께 걷고,
어느 순간엔 다시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그게 이 길의 질서 같았다 —
‘함께이되, 혼자 걷는 길’.
혼자 길을 걷는 한 미국 여성이 있었다. 가다가 만나고 헤어지고 여러 번 반복하게 되면서
용기 내어 그녀에게 물었다.
“혼자 걸을 때 외롭지 않나요?”
그녀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No problem.”
한 달째 걷고 있다는 그녀의 눈빛은
햇살처럼 반짝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함은, 결국 마음의 방향이었다.
걷는 동안 나는 점점 순례자가 되어갔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가벼워졌다.
도시의 소음 대신 바람과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계획 대신 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순례란, 단지 길을 걷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속도를 다시 찾는 일’이라는 것을.
길 위의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어제보다 단단해지고
어제보다 더 자유로워진 나를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