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작은아들의 서울살이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작은아들은 분명 아들이지만,
딸이 없는 우리 집에서는 언제나 딸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사춘기 전까지는
하루의 모든 일상을 나에게 이야기하던 아이였다.


“엄마, 오늘은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
“엄마, 오늘은 이걸 배웠어.”


그렇게 조잘조잘 이야기하던 아들을 보며
남편은 가끔 “조금 조용히 해라” 하기도 했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고,
그 웃음 속에서 하루의 피로가 녹았다.


작은아들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집에서 지냈다.
큰아이는 타지에서 대학을 다녀서
그 시절의 청춘을 가까이서 지켜보지 못했지만,
작은아들의 청춘은 내 눈앞에서 피어났다.


전공을 고민하던 시간,
진로에 대해 나누던 대화,
그리고 그 속에서 반짝이던 눈빛.
나는 그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그러던 아들이 졸업반 때,
서울의 한 회사에 취업이 되었다.
‘보내는 게 맞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아이의 미래를 위해 보내기로 했다.


어쩌면 내 마음속엔
젊은 날 가지 못했던 서울에 대한 동경도 있었는지 모른다.
우리 세대엔 “어디 여자가 서울을” 하며
여성의 꿈을 막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나는 가지 못했던 길을
아들이 대신 걸어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들의 회사는 잠실 근처였다.
첫 서울살이를 시작하는 날,
온 가족이 함께 올라갔다.
작은 원룸에서 옹기종기 하루를 보내고
돌아서는데, 마음이 이상하게 먹먹했다.
‘내 판단이 맞았을까?’
‘이 아이, 괜찮을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날은 아들의 인생에서
첫 번째 독립이자,
우리 가족에게는 또 하나의 이별이었다.


잠실 근처에서 함께 걸었던 석촌호수의 바람이
지금도 기억난다.
가을 햇살이 따뜻했고,
호숫가 벤치에 앉아 가족이 함께 웃었다.


“엄마, 카가 왜 이렇게 작아졌어?”
아들의 장난스러운 말에
남편이 웃으며 대답했다.
“너희들 때문이잖아~”


그 순간
웃음 속에 스며든 작고 따뜻한 슬픔을 느꼈다.
어느새 커버린 아이들,
하지만 내겐 아직도 어린아이들 같았다.


그 후로 내 서울 출장은 잦아졌다.
예전엔 낯설던 도시였는데,
이제는 아들이 사는 곳이라 그런지
서울이 조금은 친숙하게 느껴졌다.


“엄마, 너무 자주 오는 거 아니에요?”
아들은 웃으며 말했지만
그 말속에는 다정함이 묻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 아들은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그래도 여전히 쓸쓸한 기운이 남아 있는,
혼자만의 공간이었다.


가끔 생각한다.
‘보내길 잘한 걸까?’
‘부산에 있었으면 더 편했을 텐데…’


적은 월급에 생활비, 빠듯한 지출들.
그 모든 걸 감당하며 살아가는 아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쪽이 저려온다.


매일 전화를 주는 큰아들과 달리
작은아들은 야근이 많아 일주일에 한 번
전화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가족 단톡방을 만들었다.


“제발 서로 살아 있다는 신호라도 남기자.”
이모티콘이라도 좋으니
매일 안부를 전하자고 했다.


그 약속 이후,
이제는 하루에 한 번씩
누군가의 글, 짧은 사진, 웃는 얼굴 이모티콘이 올라온다.


멀리 있어도
우리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


사랑은 거리가 아니라 믿음의 온도라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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