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갈 때는 숙소를 소청 대피소로 정해두었다.
하지만 동행이 생기면서 계획을 바꿔야 했다.
공룡능선으로 바로 이어지는 희운각 대피소로.
설악의 가을은 언제나 붐빈다.
대피소 예약은 전쟁과도 같다.
얼마 전 비로 단풍이 다 떨어졌다 해도,
산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여전했다.
그래서 나의 손끝은 더 바빠졌다.
홈페이지를 새로고침하고,
전화로 빈자리를 확인하고,
다시 예약창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소청에서 희운각으로 변경할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우리의 여정은
진짜 시작되었다.
얼마 전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나는 불필요한 짐이 어깨를 얼마나 무겁게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설악은 가능한 한 짐을 간소화해 가기로 했다.
가벼운 배낭, 꼭 필요한 것만.
그게 산행의 첫 번째 법칙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둘이 함께 떠나는 길은
짐도, 마음도 두 배였다.
식량을 챙기고, 물을 준비하며
생각보다 짐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햇반이나 물은 대피소에서 사면되지 않을까?”
내가 조심스레 말하자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가지고 갈 수 있는데 왜 사? 괜히 돈 쓰지 말자.”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지리산에서 배운 걸 말해도
서로의 경험과 생각은 달랐다.
결국 나는 남편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함께 걷는다는 건,
때로는 나를 조금 접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곧 드러났다.
남편의 배낭은 무거웠고,
그 무게는 점점 그의 어깨와 숨을 짓눌렀다.
봉정암으로 오르는 길,
그리고 대청봉을 향하는 오르막에서
그는 자주 멈춰 섰다.
“왜 이렇게 힘들지…”
그의 목소리엔 짜증보다 체념이 섞여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산이 사람을 시험하는 방식은
언제나 이렇게 조용하고, 정확했다.
나의 배낭은 30리터, 남편의 배낭은 40리터였다.
서로 나누어 짐을 챙겼지만,
아무래도 그의 배낭이 더 무거웠다.
우리는 걷다가 초콜릿을 꺼내 먹고,
잠시 앉아 오이를 나눠 먹었다.
그렇게 먹으면 짐이 조금은 가벼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네, 아무리 먹어도 왜 이렇게 무겁지?”
나는 피식 웃었다.
무게는 줄었을지 몰라도,
그의 어깨에 남은 건 아마 피로와 고집,
그리고 함께 걷는 길의 버거움이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짐이란 줄인다고 해서 다 가벼워지는 게 아니구나.
함께 걷는다는 건,
서로의 무게를 조금씩 견디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날 밤,
희운각 대피소에서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으며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다음 오르막에서는,
내가 그의 짐을 조금 들어줘야겠다고.
함께 걷는다는 건,
결국 서로의 짐을 조금씩 나누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