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차량은 통제되어 있어, 셔틀만 이용할 수 있다.
전날 밤 우리는 백담사 주차장에 도착해 차박을 했다.
가을밤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미리 챙긴 방한 장비 덕분에 차 안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처음엔 잠이 오지 않아 뒤척였다.
하지만 “내일 설악을 오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깊이 잠들었다.
백담사행 첫 버스는 아침 7시.
시계를 5시에 맞춰 두었지만,
남편은 코를 골며 푹 자고 있었다.
깨우기가 미안해 나는 조용히 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기다렸다.
5시 반이 지나서야 그를 깨웠다.
6시 무렵,
준비해 둔 즉석떡국에 보온병의 뜨거운 물을 부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냄새가 차 안 가득 퍼졌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배낭을 챙기다 보니
어느새 7시가 되었다.
“뛰면 탈 수 있을까?” 망설이다가,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그냥 7시 반 차 타요.
그동안 짐 한 번 더 점검하면 되죠.”
그렇게 우리는 7시 30분 셔틀버스를 탔다.
창밖으로 스치는 설악의 숲은 여전히 깊고 고요했다.
백담사에 도착하자
우리는 천천히 사찰을 둘러보았다.
15년 전에는 시간에 쫓겨 그냥 지나쳤던 곳.
이제는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둘러보았다.
세월이 흘러서일까.
그때는 안갯속에 신비로운 절로만 기억했는데,
지금의 백담사는 정갈하고 단단한 느낌이었다.
백담사 앞에서 서로 기념사진을 찍고
다리도 건넜다.
계곡을 따라 쌓인 돌탑들을 보며
우리는 동시에 감탄했다.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이
이 맑은 계곡에서 바람처럼 쌓이고,
바람처럼 흩어지기를 바라며.
봉정암으로 오르기 전,
작은 사찰 하나가 길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시암이었다.
그곳엔 놀랍게도 따뜻한 물과 차,
그리고 믹스커피가 등산객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었다.
스님도, 신도도 없이 조용한 공간이었지만,
그 안엔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있었다.
‘자비로운 마음, 향기로운 세상, 행복하세요.’
현판에 적힌 그 문구가 유난히 따뜻하게 다가왔다.
산 아래의 말보다,
이 한 문장이 훨씬 진심 같았다.
컵을 하나 들고 따뜻한 물에 커피를 탔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온기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멀리서 부는 찬 바람이 얼굴을 스쳤지만,
그곳에서 나는 오히려 봄을 느꼈다.
시간이 허락했다면
대웅전에 들러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지만
봉정암까지 가야 하는 길이 아직 멀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만 인사했다.
“따뜻한 마음, 고맙습니다.”
그날 이후로도
영시암의 그 온기가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렀다.
봉정골의 가파른 오르막에 이르자
남편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숨이 차오르고,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아휴… 이 배낭, 왜 이렇게 무겁냐.”
그는 연신 투덜거렸다.
한동안 산에 오르지 않았던 몸이
이제야 자신을 드러내는 듯했다.
나는 지리산 종주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이 산에 익숙했지만,
남편의 숨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짠해졌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봉정암에 도착하면 주먹밥이랑 미역국 주잖아요.
그거 생각하면서 올라가요.”
남편은 잠시 고개를 들더니
피식 웃었다.
“그래, 미역국… 그거 진짜 맛있었지.
지금도 줄까? 그때 그 국 말이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이번에도 맛있을걸요.
미역국 먹으러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천천히 봉정암을 향해 발을 옮겼다.
길은 여전히 가팔랐지만,
그 미역국 한 그릇의 기억이
우리의 발걸음을 조금은 가볍게 해 주었다.
봉정암의 돌계단 앞에 이르렀을 때,
남편의 표정이 서서히 달라졌다.
종소리가 울리고,
따뜻한 미역국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15년 전에도 우리는 이 자리에서
그 미역국 한 그릇에 마음을 녹였었다.
오늘도 똑같았다.
다만, 그때보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고맙게 먹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네.”
남편의 한마디에,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우리 꽤 괜찮은 팀이에요.”
그 순간, 봉정암의 종소리가 다시 울렸다.
마치 오래된 인연이
다시 이어졌다는 신호처럼.
설악의 산길마다 사람의 마음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커피를, 누군가는 미역국을,
또 누군가는 함께 걷는 이 한 사람을 남겼다.
그렇게 산은, 오늘도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을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