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청대피소를 지나 삼거리에 이르렀다.
오른쪽은 희운각, 왼쪽은 대청봉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남편이 말했다.
“이제 거의 다 왔으니 배낭은 여기 두고 가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냥 메고 갈게요.”
그러자 남편은 투덜거렸다.
“이 무거운 걸 왜 굳이 매고 가? 누가 가져가겠어.”
“혹시 모르잖아요.”
“융통성이 없어. 산은 편하게 오르는 거야.”
그 말이 조금은 서운했지만,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괜히 말로 이어지면
감정만 더 깊어질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조금 더 걷다가
정상 가까이 배낭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 이래서 내려놓으라고 했구나.’
하지만 마음 한편은 여전히 복잡했다.
내가 융통성이 없는 걸까?
아니면, 그냥 끝까지 내 방식대로 해보고 싶었던 걸까.
살다 보면 편안함이 꼭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
남편의 선택이 옳았을지라도,
나는 나의 방식으로 오른 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문득 웃음이 났다.
‘그래, 이래서 함께 걷는 거지.’
같은 길 위에서도
서로 다른 속도로, 서로 다른 생각으로
결국엔 같은 정상에 닿는 것.
그게 인생이고, 부부라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드디어 오후 3시 40분,
우리는 대청봉 정상에 섰다.
날씨는 놀라울 만큼 맑았다.
평소라면 찬바람이 몰아치고
사람들로 붐벼 사진 한 장 찍기도 어려운 곳인데,
이날은 달랐다.
가을 끝자락의 평일 오후,
정상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대청봉의 하늘은 파랗게 열려 있었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어떻게 이런 날이 있을까 싶었다.
“오늘 정말 날씨가 우리 편이네.”
남편이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친구들이 당신 보고 날씨 요정이라 한다더만, 진짠가 보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게요, 오늘만큼은 요정으로 불려도 좋겠어요.”
둘 다 한동안 말을 잃었다.
바람이 불어오고, 햇살이 바위를 비췄다.
그 따스한 공기 속에서
우리는 오랜만에 아무 걱정 없이 웃었다.
우리는 정상석 앞에 섰다.
‘대청봉 1,708m.’
그 글자를 바라보며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남편이 내게 카메라를 들이밀며 웃었다.
“자, 하나 둘 셋!”
찰칵—
그 한 장의 사진 속,
나는 마치 오래전 꿈꾸던 아이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배낭을 내려놓은 어깨 위로 바람이 스쳤고,
그 바람이 마음까지 가볍게 했다.
그날의 대청봉은
그 어떤 정상보다 따뜻했다.
우리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고마움이 있었다.
산은 늘 나를 시험하지만,
결국 나를 위로한다.
내려놓음도, 붙잡음도 —
모두 내 길의 한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