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희운각으로 가는 길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대청봉에서 희운각대피소까지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하지만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길었다.
가파른 내리막과 너덜길이 이어졌고,
남편의 체력은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이 길이 왜 이렇게 미끄럽냐.”
“배낭이 더 무거워졌어.”


남편의 투덜거림이 늘어났다.
그럴 만했다.
내리막에서는 무게가 온몸으로 쏠리니까.
그의 어깨가 내려앉고,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나는 말했다.
“조금만 더 가면 대피소가 보여요.”
하지만 그 ‘조금’이 끝나지 않았다.
멀리서 희운각대피소가 보이는데
가도 가도 닿지 않았다.
보이는데 닿지 않는 길이
사람 마음을 가장 지치게 한다는 걸
그때 새삼 알았다.


나는 1년 전, 설악 제로포인트 트레일을 걸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 코스는 ‘언택트 씨투써밋 트레킹 챌린지’라 불린다.
동해의 속초 앞바다를 출발해
속초 시내의 원도심을 지나,
설악산의 정상, 해발 1708m 대청봉을 향해 걷는 길.


심(心)과 산(山)이 만나는 여정,
바다와 산이 이어지는 하이브리드 종주 챌린지였다.


그때 나는 혼자였다.
오늘보다 더 험하고, 더 외로웠다.
하지만 익숙한 풍경이 있어서
이번엔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조금만 더, 여기만 넘으면 돼요.”
나는 애써 밝게 말했다.
남편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발을 옮겼다.


가다가 멈춰서 물을 마시고,
초코바 하나를 나누어 먹었다.
달콤한 초코의 맛이 잠시 위로가 되었다.
시간은 점점 기울었고,
나는 마음속으로 계산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꼭 도착해야 해.’


드디어 오후 다섯 시,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했다.
예약 확인을 위해
대피소 관리소로 들어갔다.


“이름이랑 신분증 확인 좀 부탁드려요.”
직원의 말에 남편을 불렀다.
“여보, 신분증 좀—”
하지만 그는 대답 대신 한숨을 쉬었다.


“좀 쉬게 놔두면 안 돼?”
그 말에 나도 잠시 멈칫했다.
나도 피곤했지만, 그 역시 한계였겠지.
그래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래, 오늘은 그냥 참자.’
그렇게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부부시죠?
여기 오면 다 그래요.
하산할 때는 꼭 손잡고 내려가세요.”


그 말에 나도 웃음이 났다.
아, 다들 이렇게 산을 타고, 또 살아가는구나.


대피소 앞 의자에 앉았다.
하늘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말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저녁부터 먹어요.”
준비해 온 식량을 꺼내고
버너를 켜려는데,
불이 붙지 않았다.


“어? 이럴 리가 없는데...”
여러 번 눌러도 불꽃이 일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던 옆자리 등산객이 웃으며 말했다.
“그거요, 그냥 다이○ 가면 오천 원짜리로 사세요.
그게 훨씬 편해요.”


순간 웃음이 터졌다.
그래, 산은 늘 이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사람의 마음을 풀어놓는다.


불이 붙지 않아도,
몸은 지쳐도,
이렇게 웃을 수 있다는 게 고마웠다.



산의 길은 언제나 예상과 다르다.
그러나 그 예상 밖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알게 된다.
내려가는 길은 고단하지만,
그 길 위에서 마음은 더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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