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공룡능선을 향하여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새벽의 공기는 차가웠다.
희운각 대피소 문을 열자, 한 줄기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별빛이 가득한 하늘 아래, 세상은 잠든 듯 고요했다.
오늘, 우리는 드디어 공룡능선을 향해 오른다.


설악산 공룡능선.
이름처럼 험하고도 웅장한 길이다.
강원특별자치도 설악산의 마등령에서 무너미고개까지 이어진 이 능선은
2013년 3월 11일, 대한민국 명승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들이 공룡의 등뼈처럼 이어져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희운각대피소에서 신선대, 노인봉, 1275봉, 큰새봉, 나한봉을 거쳐
마등령까지 이어지는 길.
다섯 개의 봉우리를 넘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또다시 올라가기를
여섯 번은 반복해야 한다.
그 경사와 난이도는 만만치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공룡능선은 길이 아니라, 도전이다.”


대피소 안은 조용히 술렁였다.
공룡능선을 향해 떠날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나도 눈을 떴다.
휴대폰 알람이 울리기 전이었지만,
먼저 깨어난 사람들의 움직임이 새벽 공기를 흔들었다.


남편의 컨디션이 걱정됐다.
어제부터 기운이 없어 보였다.
‘공룡은 무리 아닐까…’
그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도 준비는 해보자.
나는 조심스레 침낭에서 나와 취사장으로 향했다.
이미 몇몇 사람들은 식사 준비로 분주했다.
그때 한 분이 웃으며 말했다.
“혹시 믹스커피 있으신 분? 제 햇반이랑 바꾸실래요?”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햇반과 커피가 이렇게 귀한 거래가 되다니.
이번엔 믹스커피만 잔뜩 챙겨온 게 조금 후회됐다.
‘다음엔 조금 더 준비해 와야겠다. 교환이 아니어도 필요한 분께 드릴 수 있게.’
그 마음이 새벽 공기 속에 천천히 번졌다.


놀랍게도 이 대피소에는 전자레인지가 있었다.
“세상에, 전자레인지라니!”
감탄하며 햇반을 데웠다.
따뜻한 밥 한 공기가 이렇게 고마운 적이 또 있었을까.
산에서 먹는 밥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동시에 채우는 위로였다.


그때 남편이 내려왔다.
“괜찮아요. 그래, 뭐 가보지 뭐.”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엔 결심이 담겨 있었다.
전날 내내 힘들어하던 모습이 떠올라 괜히 미안해졌다.


“무리하지 말아요.”
내가 조심스레 말하자, 남편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이왕 왔는데, 도장 찍고 가야지.”


이혼 도장을 떠올리게 하는 농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긴장됐던 공기가 조금은 풀렸다.


우리는 떡국을 함께 나눠 먹고,
가방을 정리하고, 배낭을 메었다.
계획보다 조금 늦어 여섯 시에 출발했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남편은 랜턴을 차에 두고 왔다며 난감해했다.
나는 내 랜턴을 건넸다.
“뒤에서 비추세요. 제가 앞에 갈게요.”
남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공룡의 등 위로 향하는 길이 시작됐다.
바위는 젖어 있었고, 바람은 매서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바람 속에서 평온을 느꼈다.


뒤를 돌아보니,
남편의 랜턴 불빛이 조심스레 따라오고 있었다.
그 불빛이, 이상하게 든든했다.


공룡의 등 위를 걷는다는 건

그저 산을 오르는 일이 아니었다.
서로를 다시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앞에서 길을 밝히고,
누군가는 뒤에서 그 빛을 따라간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한 걸음, 함께 걸었다.



서로를 향해 걷는 길이었다.
먼 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닮아갔다.
속도는 달랐지만,
그 마음의 방향만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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