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끝에서 미끄러지는 자갈,
손끝으로 느껴지는 차가운 바위결,
그 모든 것이 이 산의 위엄을 말해주고 있었다.
희운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졌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고개를 들 때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이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구름이 깎아놓은 듯한 봉우리들,
빛에 따라 색이 변하는 바위의 결,
마치 오래된 무협영화 속 장수들이
하늘을 향해 검을 겨누는 듯한 풍경이었다.
봉정암을 향하던 어제,
남편은 선녀가 목욕하던 곳이니,
선녀들이 놀던 곳이니 하며
이야기를 자주 꺼냈었다.
오늘은 또 달랐다.
공룡능선의 바위를 보며 말했다.
“저 바위 봐, 선비가 글을 쓰다 먹물을 엎질렀대.”
그의 허풍 섞인 말에 나도 웃음이 났다.
그의 말이 다소 엉뚱하게 들려도,
이 신비로운 산세 속에서는
왠지 진짜일 것만 같았다.
공룡능선은 그런 곳이었다.
현실 같지 않은 현실,
신화가 아직 머무는 세계.
길은 생각보다 험했다.
바위를 붙잡고 오르고,
밧줄을 잡고 조심스레 내려왔다.
50분마다 쉬어 가며 간식을 나눴다.
“이건 가방을 비우기 위한 거야.”
남편은 그렇게 말하며 오이를 꺼냈다.
하지만 이내 투덜댔다.
“아무리 먹어도 왜 무게가 줄질 않냐.”
그 말에 나도 웃음이 터졌다.
등 뒤의 배낭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그 웃음 덕에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바람은 세찼고, 길은 거칠었지만
풍경은 더 깊어졌다.
바위 하나, 나무 한 그루가
모두 생명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오르던 중
거대한 바위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그곳을 ‘킹콩바위’라 불렀다.
정말 고릴라처럼 생긴 바위였다.
“여기서 한 컷 찍자.”
남편의 말에 우리는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그 모습을 본 맞은편 청년이 다가왔다.
“사진 잘 안 찍는데… 여긴 찍어야겠네요.”
그의 말에 셔터를 눌러주었다.
청년은 연신 고맙다며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이 왠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잠시 후, 반대편에서 젊은 산객들이 올라왔다.
웃음소리가 능선을 타고 퍼졌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저 시절의 나는 뭐 했을까.’
그리고 그냥, 웃었다.
“우리 아이들도 이런 곳에 오면 좋을 텐데요.”
내 말에 남편이 대답했다.
“그러게. 하지만 아마 안 오겠지.”
그 말에 우리 둘 다 웃었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공룡능선 위에서의 하루는
결국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산은 언제나 사람을 비춘다.
거친 바위에 비치는 우리의 얼굴처럼,
삶도 그렇게 굴곡을 따라 빛난다.
함께 걷는 길 위에서
나는 또 한 번, 사랑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