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오세암으로 가는 길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마등령 삼거리에 도착했을 때,
긴장과 설렘이 한꺼번에 풀렸다.
우리는 바위에 걸터앉아 라면과 간식을 꺼냈다.
뜨거운 김이 오르는 컵라면 냄새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아, 이렇게 공룡능선을 마무리하는구나.”
여러 생각이 스쳐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공룡능선이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나는 등반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했던 암벽등반의 기억이
몸 어딘가에 남아 있었던 걸까.
두려움보다 익숙함이 앞섰다.
거친 암릉 위에서도 손과 발이 자연스레 움직였다.
스스로도 신기했다.


그 말을 하자,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몸으로 익힌 건 책으로 배운 거랑 달라요.
몸이 기억하는 거니까요.”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그래, 몸이 먼저 기억하는 것들.
마치 어린 시절 자전거를 배우면
오랜 세월이 지나도 다시 탈 수 있는 것처럼.


잠시 휴식을 마치고 우리는 오세암으로 향했다.
내리막이 이어지는 길은
거칠고도 고요했다.
바람은 세찼지만, 내 마음은 평온했다.
공룡능선을 마쳤다는 뿌듯함 때문이었을까.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돌길을 걷던 중, 문득 시선이 멈췄다.
바위 위에 땅콩 몇 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게 뭐지?” 하자 남편이 말했다.
“스님이 다람쥐들 겨울 먹이로 올려두셨나 봐요.”


그 말에 마음이 저절로 고요해졌다.
작은 배려 하나가 이렇게 따뜻하게 스며들다니.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그 장면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았다.


오세암에 도착했을 때,
어디선가 익숙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영화 〈오세암〉의 촬영지로 알려진 그곳,
오래된 돌계단과 절집의 기와가
여전히 그때의 장면을 품은 듯했다.


그러나 스크린 속 풍경보다
눈앞의 오세암은 훨씬 더 고요하고 따뜻했다.
산 아래와는 다른 숨결,
세상의 소음이 닿지 않는 시간이었다.


“공양 마감 전이라 다행이에요.”
미역국과 밥 한 공기를 받았다.
남편은 힘이 들어 못 먹겠다고 했다.
“그래도 국물만이라도 드세요.”
그 말에 그는 숟가락을 들었다.
따뜻한 국물 한입이
그에게도 위로가 되었기를.


공양을 마친 뒤, 대웅전 앞에 섰다.
조용히 합장하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늘 이 하루, 감사합니다.”


오세암의 벽에는 정감 있는 글귀들이 붙어 있었다.


그중 하나를 읽으며, 나는 문득 마음속으로
이 문장을 떠올렸다.


“마음이 고요해야 산도 보인다.”


어딘가에 적혀 있었던 듯,
그 글이 내 안에서 천천히 되살아났다.
정말 그랬다.
마음이 잔잔해지니
비로소 산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소리 없는 바람,
천천히 움직이는 구름,
그리고 나를 둘러싼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는 잠시 ‘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오세암에서 영시암으로 내려가는 길,
나는 연신 말했다.
“이 길, 참 좋다.”


그 길은 한용운 선생이
봉정암과 오세암을 오가며
도를 깨우쳤다는 길이었다.
“아, 역시 어쩐지.”
내가 감탄하자 남편이 웃었다.


내려오는 길에
등산화를 벗고 양말만 신은 여성을 만났다.
발이 아파 더는 신을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잠시 멈춰 섰다.
나는 배낭 속 비상키트를 꺼내
그녀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그때 문득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그라미, 네 배낭엔 뭐가 그렇게 들어 있니?”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서였다.


그날, 나는 산에게 선물을 받았고
또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설악의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갔다.
공룡능선을 지나, 오세암을 거쳐,
감사의 마음으로 산을 내려왔다.


산은 늘 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길을 내어줄 뿐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몸이 기억하는 용기와

마음이 기억하는 감사의 순간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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