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산이 나를 내려보내는 길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공룡능선을 내려와
오세암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한 시쯤이었다.


짙은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쳐 들었고,
바람은 차가웠지만 마음은 고요했다.
거친 암릉을 넘어온 시간들이
한순간에 포근하게 가라앉는 듯했다.


사찰 마당은 고요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와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묘하게 어우러졌다.


남편은 벤치에 앉아 한참을 말없이 쉬었다.
“이제 진짜 끝이구나.”
그 한마디에 하루의 무게가 다 담겨 있었다.


나는 사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웅전 앞에 앉아 숨을 고르고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가
내 마음의 먼지를 천천히 털어주는 듯했다.


오세암에서는 고마운 시간이 흘렀다.
공양 시간이 마감되기 전이라
따뜻한 미역국 한 그릇을 나눌 수 있었다.
국물 한 모금이
몸보다 마음을 먼저 녹였다.


남편은 힘들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내가 떠민 국그릇을 결국 다 비웠다.
“이 국물 덕분에 살겠다.”
그의 웃음 속에 여정의 끝이 묻어 있었다.


나는 대웅전 앞에서
잠시 눈을 감고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이 길의 모든 순간에 감사합니다.”


오세암에서 영시암으로 향하는 길.
어제의 험로가 믿기지 않을 만큼
길은 평화로웠다.


가을의 끝자락,
바스락거리는 낙엽 사이로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어제 이곳에서 느꼈던 따스함이
오늘은 한결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남편은 한결 가벼운 얼굴로 말했다.
“이 길, 정말 좋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산이 우리를 보내주나 봐요.”


영시암에 도착했을 때,
그곳의 정경은 여전히 사람의 온기로 가득했다.
대문 옆에는 여전히
따뜻한 물과 믹스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 작은 정성이
길 위의 모든 피로를 씻어내주었다.


남편은 말없이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평화로워 보였다.


나는 잠시 합장했다.
“이 모든 여정이 참 고마웠습니다.”


영시암에서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은
긴 숨처럼 이어졌다.
낙엽 위를 밟는 소리,
그 바스락 거림이
마치 산이 들려주는 마지막 이야기 같았다.


남편이 앞서 걷고,
나는 그 뒤를 천천히 따랐다.
멀리서 보이는 공룡의 능선이
이제는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백담사에 도착하니
계곡물이 반짝이며 흘렀다.
그 소리가 마치
“수고했어요” 하고 말하는 듯했다.


남편이 말했다.
“이제 진짜 다 끝났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요. 그래도, 참 좋았어요.”


일주문을 지나며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고마워요, 설악.
이번 길은 오래 기억될 거예요.”


산은 늘 나를 시험하고,
결국에는 나를 품는다.

오르며 용기를 배웠고,
내려오며 평화를 알았다.

산은 정상을 향한 도전이 아니라,
하산길에서 완성되는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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