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앞서 가던 남편이 정류장에 서 있었다.
오후 6시가 마감이라
이 시간대엔 사람들이 몰릴 거라 예상하고
먼저 가서 줄을 서 있었던 모양이다.
맨 앞에서 손을 흔들며 “여기요!” 한다.
어제오늘 지쳐 있던 얼굴과는 사뭇 다르다.
이제 정말 끝났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그의 얼굴에 오랜만에 미소가 번졌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조금 전에 버스가 떠났다고 했다.
버스는 30분마다 운행된단다.
도착 시각은 오후 4시,
우리는 그제야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오늘 등반은 아주 양호했어요.
수고했습니다.”
내가 말하자 남편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낭을 맡기고 화장실에 다녀와
주변을 둘러보려는 찰나,
멀리서 버스 한 대가 들어왔다.
아직 30분이 되려면 한참인데,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니
예정보다 일찍 들어온 모양이었다.
그때 정류장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남편이었다.
나는 달렸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맨 앞줄에 서 있던 그가
얼마나 마음이 다급했을까.
버스에 올라타자
운전기사님이 물었다.
“한 분 더 오신다고 하셨죠?”
남편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네, 여기 있습니다!”
그 말에 버스 안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버스는 천천히 백담사를 떠났다.
좁고 굽은 산길을
고불고불 내려가며 조심스레 달렸다.
맞은편에서 다른 버스가 올라오면
잠시 멈춰 서로에게 길을 내어주었다.
무전기로 주고받는 기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전한 길,
이 산에서만 볼 수 있는
서로의 배려였다.
설악산의 나뭇잎들은 이미 대부분 떨어져
단풍을 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백담사에서 내려가는 길가엔
붉은 단풍나무, 노란 은행나무가
아직 가을의 끝을 붙잡고 있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래요, 아직 가을이에요.”
창밖의 산은 점점 멀어지고,
마음은 천천히 내려앉았다.
길 끝에서 바라본 산의 실루엣이
이상할 만큼 따뜻했다.
여행은 늘 끝에서 빛난다.
산이 멀어질수록
그 길 위에서 나눈 웃음과 다툼,
묵직한 배낭의 무게까지도
모두 감사로 남는다.
이 길이 끝이 아니라,
다음 길의 시작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