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바다 앞의 쉼표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백담사를 내려오니 어느덧 저녁이었다.
버스 창밖으로 설악의 능선이 멀어지고,
대신 바다의 냄새가 차창 사이로 스며들었다.


창가에는 빗방울이 맺히더니
곧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그 비를 따라 마음도 조금 느려졌다.


남편이 말했다.
“이제 바로 집으로 가자.”
그 마음이 이해되었다.
하지만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조금만 더, 바다 한번 보고 가요.”


그 한마디에 남편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핸들을 천천히 틀었다.
차는 속초로 향했다.


도착한 시각은 해가 기운 저녁 무렵.
먼바다에는 아직 잔빛이 남아 있었고,
우리는 곧장 속초 해변 근처의 물회집으로 향했다.
등반을 마치고 올 때마다 들르던 곳이었다.


남편은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아랫지방이랑은 다르네. 회덮밥에 매운탕이 없다고?”
“여긴 원래 그래요.”
“참 이상하네.”
그러면서도 결국 깨끗이 비웠다.
“그래도 맛있다. 고마워요.”
그 말에 피로가 눈 녹듯 풀렸다.


식사 후, 전통시장으로 향했다.
시장 안은 여전히 붐볐고,
갓 튀겨낸 닭강정 냄새가 골목을 가득 메웠다.
그 향에 발걸음이 멈췄다.


“이 집이 그렇게 유명하다더라.”
“그래요, 줄도 꽤 길어요.”


우리는 순서를 기다리며
이틀간의 산행 이야기를 나눴다.
남편은 내 배낭 이야기를 꺼냈고,
나는 아이들 이야기를 꺼냈다.


닭강정을 고르다 보니
큰아이 생각이 났다.
택배가 된다고 하길래
자연스레 작은아이 몫도 함께 주문했다.
전화를 걸자 아이는 말했다.
“엄마, 고마워요.”
그 짧은 한마디가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시장을 나설 때는 빗줄기가 다시 굵어졌다.
남편은 말했다.
“이제 정말 쉬자.”


우리는 양양 쪽 해변으로 차를 몰았다.
차박지에 도착하자 파도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창문에 빗방울이 부딪혔다.


준비해 온 치킨과 과자를 꺼내 놓고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했다.
라디오에서는 잔잔한 노래가 흘렀다.
남편은 금세 잠이 들었다.
나는 그 옆에서 파도 소리를 들었다.


하루 전, 공룡능선의 바람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었다.
거친 산의 숨결은 사라졌지만
이제는 바다가 그 빈자리를 품고 있었다.



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바다는 나를 부드럽게 감싼다.


설악의 오름과 속초의 밤,
그 두 세계가 만나는 지점에
나는 잠시 머물렀다.


그곳에서 비로소 알았다.
모든 길의 끝에는
이런 고요한 순간이 기다리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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