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를 벗어나 7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달렸다.
차창에 빗방울이 맺히더니 이내 굵어졌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이 희미하게 번지며
창밖 풍경이 천천히 젖어들었다.
“낙산사, 이 근처에 있어요. 한번 들러보실래요?”
내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혼자서나 회원들과 여러 번 왔던 곳이지만
남편은 오랜만일 터였다.
“시간 없어요.”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남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가요.”
낙산사에 닿자,
비는 가랑비처럼 살포시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우산을 쓰고 천천히 걸었다.
젖은 흙냄새와 솔잎 향이 뒤섞여
공기마저도 부드럽게 느껴졌다.
남편은 담장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옛날엔 이렇지 않았어요.
회사 동료들과 왔었는데, 그땐 훨씬 한적했죠.”
비가 떨어지는 소리와 스님의 염불,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묘하게 어우러졌다.
그 소리들은 마음 깊은 곳을 차분히 두드렸다.
나는 빗방울이 나뭇잎에 맺혀 반짝이는 모습을
너무 신기해서 자꾸만 핸드폰으로 찍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웃었다.
“당신은 참 좋겠어요.
아직도 이런 걸 보고 감동할 줄 아는 게.”
우리는 홍련암까지 내려갔다.
바다 끝 절벽 위에 세워진 작은 암자 앞에서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스님의 목탁 소리와 파도의 리듬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비는 점점 잦아들고
하늘빛은 옅은 회색으로 변해갔다.
낙산사 중간에 마련된
무료 차를 마실 수 있는 작은 정자에서
남편은 따뜻한 차 한 잔을 손에 들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의 눈빛이 편안해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우리가 함께 걸어온 시간도
이 빗방울처럼 조용히 내려앉았으면 좋겠다.’
산에서 배우는 건 인내였고
바다에서 배우는 건 쉼이었다.
그리고 오늘,
비 내리는 사찰에서 배운 건
‘머무름의 온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