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설악과의 대화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길의 끝에서 나는 다시 설악을 바라보았다.
멀리 능선 위로 구름이 흘렀고,
그 아래엔 바다의 푸름이 고요히 깔려 있었다.


며칠간의 여정이 한 장의 풍경처럼 스쳐갔다.
봉정암의 종소리
공룡능선의 거친 바람
오세암의 맑은 미역국 향
낙산사의 고요한 빗소리까지
모든 순간이 하나의 대화처럼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설악에게 물었다.
‘왜 나는 다시 이곳으로 왔을까?’


설악은 대답 대신
잔잔한 바람을 보내왔다.
그 바람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너는 길을 걷는 사람이지.
오르내림 속에서 배우고,
머무름 속에서 다시 나아가는 사람.”


그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는 그렇게 걸어왔다.
넘어지면 쉬고, 힘들면 멈추며,
그래도 다시 발을 내딛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옆에서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옆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의 인생도 산을 닮았구나.
때로는 가파르고, 때로는 평탄하며,
결국 함께 걸어온 길이 하나의 능선이 되었구나.’


파도 소리가 설악의 품을 두드리듯 들려왔다.
그 소리에 마음이 잔잔히 내려앉았다.


길은 끝났지만,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길 위로 나설 날이 올 것이다.
그땐 또 다른 계절의 설악이,
다른 빛의 바다가 나를 맞이하겠지.


나는 속으로 조용히 인사했다.
“잘 있었어요, 설악. 그리고 고마워요.”



길 위에서 배운 건 ‘끝’이 아니라 ‘순환’이었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산을 바라보는 나는 매번 달라져 있었다.


걷는다는 건
결국 ‘변해가는 나’를 만나러 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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