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겁 많고 소심했던 나의 발걸음이, 어느덧 삶의 길이 되었다.
지금, 나로 피어나다
- 겁 많고 소심했던 나의 발걸음이, 어느덧 삶의 길이 되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문득 멈춰 설 때가 있다.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
치열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이제는 조금씩 멈추어도 괜찮다는 허락을 스스로에게 내릴 수 있는 나이.
나는 지금, 나로 피어나고 있다.
나는 현재 코리아 둘레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과 매월 주말마다 해파랑길, 남파랑길, 서해랑 길을 함께 걷고 있다. 얼마 전, 회원들과 단합대회를 갔을 때 한 회원이 갑자기 손을 들며 질문을 했다.
"리더님은 어떻게 길을 걷게 되셨나요? 겁도 많으신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산을 오르고 절벽을 오르세요?" 그 말에 나는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간단히 답했지만 그 질문은 내 마음속에 오래 남아 계속 생각하게 만들었다. 겁 많고 소심한 내가 어떻게 혼자 길을 걷고 혼자 산을 오르게 되었을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결혼 후에도 직장 생활을 계속했다. 그 시간 속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자 동분서주하며 언제나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늦깎이 학업을 시작했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날 나는 길을 잃었다. 직장에서 상사와 업무적으로 부딪히고 새로운 업무만 도맡아 하다 보니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건강에도 문제가 생겼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생기면서, 모든 일상이 무너졌다. 모든 것이 자신이 없었다.
그 시간 속에서 만난 것이 바로 ‘해파랑길’이었다. 난생처음 온라인 커뮤니티를 검색해 보고, 동호회 회원들의 응원을 받으며 첫걸음을 내디뎠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의 해변 길, 숲길, 마을 길 등을 이어 구축한 총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걷기 여행길이다. 고향이 부산이라 출발점은 익숙했지만 혼자 길을 걷는다는 사실은 여전히 두려웠다.
처음에는 부산 구간만이라도 걸어 보자는 마음이었지만 동해바다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포항 구간까지는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수 있었지만 강원도로 갈수록 당일 여정은 점점 힘들어졌다. 그래서 금요일 저녁 심야버스를 타고 새벽에 도착한 뒤 걷고 또 당일 저녁 심야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어느 날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어쩔 줄 몰라하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에쿠, 거기까지 갔으면 하루 더 편하게 있다가 오세요"라고 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생애 첫 외박을 하게 되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나는 처음으로 3일간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나는 온전히 '길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시간은, 이제껏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간이었다. 나에게 여행은 항상 새로운 경험을 해야만 하는 과정이었다. 출장이나 여행을 떠날 때면, 일행보다 일찍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고, 일정이 끝난 후에도 바쁘게 움직이며 더 많은 것을 보려 애썼다. 나는 늘 바쁘게 움직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여행은 '쉼'이 아니라 뭔가 배워야만 하는 숙제 같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길 여행은 달랐다. 친구가 물었다.
“왜 걸어?”“응, 나를 찾기 위해서”처음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왜 그렇게 걸어?”. “응, 그냥 걸어.”현재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처음 길을 걸을 때는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그 생각들을 잊어버린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계속 길을 걷고 산을 오르는 지도 모르겠다. 길을 나서는 것은 단순히 걸음을 옮기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내게 주었다.
해파랑길을 걸으며, 해와 바다, 바다 위에 빛나는 윤슬, 스치는 바람, 그리고 파란 바다와 자연의 소리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되었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이 시간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현재의 나와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길 위에서 찾는 행복, 길을 걷는 것은 단순히 걷는 것이 아닌 자기를 찾고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나는 길 위의 시간을 통해 나를 발견하였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나만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새로운 길을 시작하면서, 지난 시간 길을 걷는 동안 느꼈던 마음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길은 때로 정해진 목적지가 있지만,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때도 있다. 마치 인생과 같다. 나는 고민했다.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내가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걸까? 늘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도전해 왔다.
“길을 모르면 물어서 가면 될 것이고, 잃으면 헤매면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의 목적지를 잃지 않는 마음이다.” 두이체의 말처럼, 길을 가다가 길을 잃게 되면 헤매면 되고 그 시간 속에서 또 다른 선물이 주어짐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이라는 것을 길을 걸으며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나는 퇴직을 앞두고 있다. 어느새 60대가 되었다. 아직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많은데 조금씩 멈추게 된다. 얼마 전 모임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우리 중에서 20대나 30대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 놀랍게도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다들 지난 시간으로 돌아가기보다 지금이 좋다고 했다. 고민과 책임으로 가득했던 젊은 날보다 지금이 더 자유롭고 소중하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치열했던 30대, 일인 다역을 해야 했던 지난날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지금이 좋다. 어느새, 지금의 이 시간이 좋다.
그동안 나는 ‘나를 찾겠다’는 이유로 산으로 길로 떠났다. 하지만 이제는 진정한 나를 위해 살고 싶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오래된 버킷리스트—와이너리에서 한 달 살기와 국토 순례 그리고 빵을 배워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와 어학연수 등—하나하나 실천할 것이다.
겁많고 소심했던 여자의 그동안 도전과 경험. 나의 경험이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가 될 수 있는 글을 쓰리라.
앞으로의 시간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궁금한 것은 찾아가며 살고 싶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나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만의 길을 걸으며 나답게 살아가려 한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