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뭐 하실 건가요?
“퇴직 후 뭐 하실 건가요?”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나는 웃으며 답한다.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안타까운 눈빛을 보낸다.
퇴직을 몇 달 앞두고도 계획이 없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사실 10년 전, 나는 이 질문으로 깊은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그 답을 찾고 싶어 여행을 자주 떠났다.
유럽의 어느 광장에서, 나는 젊은 청춘보다 시니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카페에서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대화하는 사람들
산책길에서 천천히 걸으며 순간을 즐기는 여행자들.
무엇 하나라도 더 보겠다고 분주히 움직이던 나와 달리
그들은 참 평온해 보였다.
스위스 융프라우로 가는 케이블카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두 소년을 정성스레 챙기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손주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는 은퇴 후 지역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자였다.
부모들이 일하러 간 동안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에
나는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깨달았다.
은퇴란 단절이 아니라 내가 받아온 것을 다시 나누는 시간일 수 있구나.
지금 나는 퇴직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임금피크제가 시작되면서 회사에서의 권한과 역할은 줄었고,
워킹홀릭이었던 나는 점점 작아지는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줄어든 근무시간에도 여전히 늦게까지 일을 하곤 했다.
후배들이 “선배님, 아직 안 가세요?” 하고 묻는 순간마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피크 대상 직원에게
새로운 부서 근무 제안이 들어왔다.
서울로 가고 싶었지만 남편을 홀로 두고 갈 수 없었다.
경제적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타지 생활을 감당하기도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나는 지역 내 신설 부서를 선택했다.
주변에서는 굳이 고생을 자처하느냐며 만류했지만
나에게는 마지막으로 초심으로 돌아갈 기회처럼 느껴졌다.
20년 전 처음 시작했던 창업지원 업무,
그때 느낀 열정과 설렘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지금은 신설 부서에서 하루하루를 새롭게 쌓아가고 있다.
일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기도 하지만
내가 남긴 작은 흔적이
후에 이 자리에 올 누군가에게 더 나은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퇴직 후 뭐 하실 건가요?”라는 질문에
나는 이제 이렇게 답한다.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정말 기대돼요.”
계획 없는 시간, 알 수 없는 내일.
그러나 그 알 수 없음이 오히려 내게 설렘을 준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그 미지의 하루가
조용히 나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