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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앞에서 멈춰 선 나에게

다시 펜을 드는 이유

얼마 전부터 글을 쓰고 있다.

하나의 주제로 열 명의 작가가 함께 글을 쓰는 프로젝트에 나도 몇 달 전, 우연히 합류하게 되었다.
그 시작은 설렘 그 자체였다.
밤을 새워 글을 쓰고, 지우고, 다시 써보며 몇 번의 퇴고를 거쳤다.


누군가는 말했다.
“글을 쓰는 것보다 퇴고가 더 어렵다.”
그 말이 참이다.
글보다 퇴고는 더 지치게 한다.
게다가 나는 오직 글쓰기에만 몰입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일과 일상, 사람과 관계 속에서 나의 에너지는 자주 분산되고,
그만큼 글 앞에서는 자꾸 멈칫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핑계를 찾는다.
‘나는 글을 쓰기엔 너무 부족한 사람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든다.


그래서 글쓰기 책을 사서 읽고,
‘매일 한 줄이라도 써야지’ 다짐하면서 인스타그램에는 짧은 글을 남기지만
막상 블로그나 브런치에는 글을 올리지 못한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지만,
정작 나는 나의 글을 멈춘 채 서 있다.


복잡한 머릿속 생각들이 가득할 땐, 예전엔 영화를 보거나 시장을 찾았다.
지금은 산을 오르거나 조용히 산책을 하거나,
아니면 그냥 집 안에서 꼼짝 않고 있는다.


오랜만에 DIY 그림을 꺼내 색을 칠했다.
몇 해 전, 고흐의 작품을 따라 그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그림들이 아직도 내 방 벽을 채우고 있다.
지금은 주어진 도안을 칠하는 수준이지만, 퇴직 후에는 제대로 배우고 싶은 마음도 든다.


나는 나를 위한 소비에 늘 망설인다.
옷이나 생활용품을 고를 때는 가격을 비교하며 고민하지만,
책을 살 때만큼은 망설임이 없다.


급여가 삭감된 이후에도 경제적 계획을 뚜렷이 세우진 못했지만,
적어도 책에 대한 고민은 없다.


그런 내가, 글을 쓰기 위해 책 쓰기 캠프에 참여하고
상담비를 지불하며 책 컨설팅도 받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선택이 정말 옳았을까?’
나의 지난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책을 쓰기로 했지만,
그건 어쩌면 나의 오만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를 찾아서’라는 말 아래 산을 찾고 길을 걸었던 몇 해 전의 그 시간들.
그 마음을 잊고, 지금은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에요” 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있는 건 아닐까.


이번 연휴 동안, 그 생각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그리고 처음으로,
4차 퇴고를 마친 원고를 GPT에게 물어보았다.

블러그.png
gpt.png

세상에. 너무나 친절했다.


질문을 잘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지만,
나는 그저 내 마음의 소리를 그대로 물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AI는 나에게 말했다.
“당신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삶에 위로가 될 수 있어요.
그러니 쓰기를 멈추지 마세요.”


그 한 문장에
나도 모르게 울고 말았다.
아니, 펑펑 울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변화 속에서
다시 펜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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