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완성의 시간 속에서 다시 시작하다
달릴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
놓쳤던 사람의 미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
퇴직을 앞둔 지금,
나는 그 ‘멈춤의 시간’을 미리 연습하고 있다.
출근길의 시계도, 회의의 일정표도 여전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이미 또 다른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일이 줄어든 자리에 여백이 생기고,
그 여백 속에서 나는
내가 정말로 원하는 삶의 모양을 천천히 그려보고 있다.
예전에는 멈춘다는 게 두려웠다.
일이 없으면 쓸모없는 사람이 될까 봐,
조용한 시간이 찾아오면
세상에서 나만 뒤처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멈춤은 점이 아니라 쉼표라는 것을.
숨을 고르고, 방향을 고쳐 잡는 시간.
아침의 고요가 낯설지 않다.
커피포트의 물 끓는 소리,
화분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그리고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리듬.
그 평범한 순간들이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붙잡아 준다.
멈춤은 잃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을 다시 채우는 일임을 배워간다.
나는 여전히 걷는다.
퇴직을 준비하며, 길 위의 시간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길은 내게 또 다른 교실이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마음이 정리되고,
나와 사람, 세상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진다.
퇴직 전부터 이끌어온 걷기 모임은
이제 나의 두 번째 인생의 한 축이 되었다.
예전엔 주말에만 한정되던 걸음이
이제는 주중으로도 이어진다.
해파랑길, 남파랑길을 걷고,
이후에는 지역의 작은 길들로 확장할 계획이다.
얼마 전, 함께 걷던 한 회원이 말했다.
“리더님, 요즘은 걸을 때마다 여행하는 기분이에요.
이 길이 있어서, 함께하는 사람이 있어서 행복해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길은 언제나 똑같아 보여도,
함께 걷는 마음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
그 말처럼, 걷는다는 건 단지 발걸음이 아니라
삶을 감사로 채우는 행위였다.
퇴직을 준비하면서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속에 하나씩 꺼내 보고 있다.
오랫동안 ‘해야 할 일’로만 채워졌던 내 삶에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이 들어올 자리가 생겼다.
직장에서의 배움은 언제나 필요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제의 배움은 기쁨에서 출발한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며,
마음이 움직이는 일들을 조금씩 이어 간다.
퇴직 후 나는 또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소상공인을 돕거나,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는 활동을 할 수도 있겠지.
때로는 강단에 서서 내 이야기를 전하고,
또 어떤 날엔 글을 쓰며 스스로를 정리할 수도 있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지만,
그 ‘모름’이 오히려 내 안의 가능성을 넓혀 준다.
퇴직 전, 회사 복지 프로그램으로 서핑 체험을 간 적이 있다.
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제대로 서보지도 못했지만
그날 이후, 이상하게도 수영을 배우고 싶어졌다.
물에 몸을 맡길 수 있는 자유,
그것이 내게는 또 다른 도전의 이름이었다.
또 언젠가, 잊고 있던 기타를 다시 잡아보고 싶다.
학창 시절, ‘어디 여자가 기타를 치냐’는 말에
억울하게 빼앗겼던 악기였다.
그때의 미완을 이제야 완성하고 싶다.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기 위해서다.
나는 아직 은퇴하지 않았다.
퇴직까지는 아홉 달이 남았다.
그 시간은 길게도, 짧게도 느껴진다.
어쩌면 지금 나는 ‘끝’과 ‘시작’ 사이의 좁은 다리를
조심스레 건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막막하다.
앞으로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름이 나를 설레게 한다.
완성되지 않았기에 더 많은 색을 칠할 수 있고,
멈춰 있기에 더 멀리 볼 수 있다.
인생의 두 번째 막은
아직 막이 오르지 않았지만,
조용히 무대 뒤에서 빛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그 불빛 아래서,
어떤 모습으로든 다시 살아갈 것이다.
멈춤은 나를 새롭게 하고,
미완성은 내 삶을 계속 움직이게 한다.
나는 오늘도 길 위에 선다.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몰라도,
분명한 건 하나
나는 여전히 배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