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은 이유
“이제 쉬어야죠?”
그 말에 나는 웃었다.
쉬는 것도 좋지만, 나는 여전히 배우고 싶었다.
일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마음의 호기심까지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직장에 있을 때의 배움은 언제나 ‘해야 하는 일’이었다.
성과를 위해, 책임을 다하기 위해,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배웠다.
그러나 지금의 배움은 다르다.
이제는 ‘필요’가 아니라 ‘기쁨’에서 시작된다.
누구의 지시도, 평가도 없는 자리에서
나는 오롯이 내가 선택한 길 위에 서 있다.
그 자유 속에서 배우는 일은,
다시 살아 있는 나를 느끼게 한다.
몇 해 전,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어를 꺼내는 일조차 어색했지만,
이내 글 속에서 내 마음의 온도를 발견했다.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갈수록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나고,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글쓰기는 내 안의 거울이다.
펜을 들면 하루가 정직하게 비친다.
행복한 날은 문장이 밝고,
조금 힘든 날엔 글씨가 흔들린다.
그러나 그 모든 흔들림마저 나의 일부다.
작년, 용기를 내어 여행 이야기를 전자책으로 펴냈다.
비록 작은 책이었지만,
내 삶에서는 가장 큰 도전이었다.
그 이후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면서
나는 비로소 ‘글을 쓰는 사람’의 길 위에 서게 되었다.
이제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나를 단단하게 세우는 치유의 시간이다.
퇴직 후, 나는 오래 미뤄둔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일할 때는 늘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한 일이었다.
지금은 가족을 위한 밥상을 차리는 일이
하루의 가장 큰 기쁨이 되었다.
김치를 담그며 할머니의 손길을 떠올리고,
국을 끓이며 가족의 웃음을 생각한다.
요리는 나를 돌보는 일이다.
칼질 소리와 끓는 냄비의 온도 속에서
나는 평온을 배운다.
식탁에 앉은 남편의 얼굴에서
삶의 감사가 피어난다.
언젠가는 한식 조리사 자격증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
배움에는 마침표가 없으니까.
나는 여전히 걷는다.
걷기는 내 인생의 리듬이고, 명상이다.
퇴직 전에도 주말마다 회원들과 걷던 길,
이제는 주중으로도 이어진다.
해파랑길, 남파랑길을 함께 걸으며
누군가와 나란히 걷는 시간은 늘 새로운 배움이 된다.
길 위에서 마주한 풍경보다
더 값진 것은 ‘사람의 이야기’다.
얼마 전, 함께 걷던 한 회원이 말했다.
“리더님, 단순히 걷는 게 아니라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요. 행복했어요.”
또 다른 회원은 이렇게 말했다.
“3년 전엔 잘 걷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리더님 덕분에 제 걸음을 찾았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걷기의 의미를 다시 배웠다.
걷는 동안 나는 배운다.
하루의 속도를 늦추는 법,
함께 걷는 법, 그리고 멈춰 서서 바라보는 법을.
길 위의 바람은 늘 다정하다.
그리고 그 바람은 말없이 이렇게 속삭인다.
“배움은 멈추지 않아야 아름답다.”
얼마 전, 나는 파크골프를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새로운 취미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공이 채끝에 닿아 맑은 소리를 내는 순간,
이 운동이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경쟁도 기록도 없는,
오직 내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시간.
그 속에서 나는 평온을 배운다.
몸을 움직이는 일은 단지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단단하게 세우는 일이었다.
꾸준히 연습하다 보니
어느새 파크골프 지도자 과정을 수료했다.
언젠가 이 배움을 나누고 싶다.
걷기처럼, 인생의 또 다른 길로 이어질 것 같아서다.
퇴직 전, 회사의 복지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서핑 체험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날, 젊은 후배 하나가 풀장에 몸을 맡기더니
하늘을 향해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너무 자유로워 보였다.
나도 따라 해보고 싶었지만,
물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튜브를 끼고 있음에도,
몸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선배님, 힘을 빼고 그대로 떠보세요.”
후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결국 물 위에 뜨지 못한 채 그대로 서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내게 하나의 결심을 남겼다.
언젠가 꼭 수영을 배우고 싶다.
물에 몸을 맡길 수 있는 자유,
그것이 내게는 또 다른 배움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요즘은 이상하게도 하고 싶은 게 많다.
학창 시절, 몰래 기타를 배우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 “어디 여자가 기타를 치냐”는 말에
기타를 빼앗겼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기타는 내 삶에서 멀어졌지만,
이제는 다시 배우고 싶다.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때 미처 다하지 못했던 나를 만나기 위해서다.
기타든 드럼이든,
무엇이든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해볼 생각이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깨우는 배움,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의미 있다.
퇴직 이후의 배움은 성취보다 깊이에 닿아 있다.
예전에는 “얼마나 많이”가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얼마나 즐겁게”가 기준이 된다.
배움은 나를 확장시키는 동시에
내 삶의 온도를 따뜻하게 덮어 준다.
“배우는 사람은 나이를 잊고,
가르치는 사람은 삶을 다시 배운다.”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책에서, 길에서, 사람에게서,
그리고 매일의 삶 속에서.
배움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깨어 있는 사람의 권리다.
오늘도 나는 배운다.
어제보다 조금 더 깊은 마음으로,
내일의 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