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겁이 많지만, 하고 싶은 건 한다

:두려움은 멈춤이 아니라, 나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다.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지리산 종주 갈래?”

친구의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였다.

“지리산? 알았어.”

망설임 1초도 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곧 생각했다.

‘지리산… 종주는 처음인데, 내가 할 수 있을까?’

대답은 했지만 마음은 불안했다.

그때부터 지리산과 함께한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언제 처음 올랐을까, 또 언제 다시 찾았을까.

스무 살 무렵, 나는 처음 지리산에 올랐다.

특별히 산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그저 함께 나선 사람들 틈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한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청바지에 운동화, 긴 양말, 타이즈 모습. 장비라곤 없던 그 시절의 나.

참 순수하고, 또 어쩐지 애틋했다.


시간은 흘러, 오십을 넘긴 지금의 나는‘100대 명산 도전’을 마친 사람이다.

친구들은 “이제 무릎이 아파서 못 간다” 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때부터 산에 빠져들었다.

운동이라곤 해본 적 없던 내가 전국의 명산을 오르내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혼자였다면 결코 하지 못했을 일. 함께한 산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록을 보니, 지리산은 내 76번째 산이었다.

2019년 여름, 무려 서른 해가 흐른 뒤 다시 오른 천왕봉이었다.


지리산 둘레길을 걸을 때, 누군가 말했다.

“지리산 종주는 꼭 해보셔야 해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집에 돌아와 종주 수첩까지 샀지만, 코로나로 대피소가 닫히며 계획은 미뤄졌다.

그래서였을까.

이번엔 망설임 대신, 묘한 확신이 밀려왔다.

“그래, 이번엔 가보자.”


장거리 걷기 대회에서 66km, 110km를 걸은 적도 있지만 종주는 또 다른 세계다.

출장과 업무를 마치고 곧장 출발해야 하니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다.

재미있는 건, 체력보다도 머릿속을 맴도는 사소한 고민들이었다.

“머리는 언제 감지?”

“이틀은 괜찮은데, 3일은 어떡하지?”

“짐은 또 어떻게 줄이지?”이런 생각을 하며 웃음이 났다.

정작 중요한 거리나 체력보다

그저 ‘일상 속의 나’를 먼저 떠올리는 나 자신이 우스웠다.

‘아, 그래. 준비라도 해보자.’

리스트를 적어 내려가며 생각했다.‘그런데, 정말 내가 걸을 수 있을까?’

혼자였다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함께 걷는 친구가 있기에

나는 또 한 번 길 위에 설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걱정은 남아있다.

참, 나는 여전히 생각이 많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두려움이 사라져야만 걸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품고서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함께하니까 괜찮다. 서로의 속도를 기다려주는 동행이 있으니까.


아직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마 느린 걸음에 티격태격, 잔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함께하니까.

나는 여전히 겁이 많지만 하고 싶은 건 한다.

그게 바로,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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