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운전대를 잡지 못한 이유

:두려움의 뿌리를 이해할 때, 회복이 시작된다.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얼마 전, 친구가 말했다.

“요즘 차박 여행에 푹 빠졌어.”
그 말을 들으며 피식 웃었다.
사실 우리 중 처음으로 ‘차박’을 이야기한 사람은 나였다.


부산에서 서울, 지방 곳곳을 오가며
무거운 배낭과 짐을 메고 다니던 나에게
자동차는 또 하나의 집이자, 자유의 확장이었다.
이동과 숙박, 두 가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주는,
그야말로 나의 ‘움직이는 삶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지금도 운전을 하지 않는다.


얼마 전, 여주에 사는 선배가 말했다.
“이번 주말에 집으로 한번 올라와.”나는 대중교통을 검색했다.
그러자 선배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 너 운전 안 해? 그렇게 전국을 다니는 사람이?”그 말에 나도 웃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조금 쓸쓸했다.


나는 운전면허가 있다. 그것도 오래된 1종 보통 면허다.
내 이름으로 된 차도 있다. SUV를 할부로 구입한 지 몇 년이 됐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면허도 있고 차도 있는데, 왜 안 해요?”

나도 모른다. ‘안 하는 걸까, 못 하는 걸까.’

처음엔 단순히 귀찮아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다.
그건 ‘두려움’이었다.


몇 해 전부터, 이상하게도 교통사고가 잦았다.
대부분 뒤에서 들이 받히는 사고였다.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순간, 내 뒤편에서 차량이 신호 대기 중이던 내 차를 들이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졸음운전이었다.

“끼익―”
귀를 찢는 소리, 짧은 충격,
그리고 멍하니 핸들을 잡고 있던 나.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그날 이후 운전대 앞에 앉는 게 두려워졌다.


시동을 걸면 심장이 먼저 뛰었다.
액셀을 밟으려 하면 다리가 떨렸다.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멀어졌다.
운전석에 앉는 일 자체가 긴장이 되었다.


이제는 정말 운전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작년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사고가 났다.
반대편 차선에서 차선 위반을 한 차량이 신호 대기 중이던 내 차를 들이받았다.

그 충격으로 앞차와도 부딪혔다.
3중 충돌이었다. 한순간의 사고였지만 그날 이후 나는 다시 운전대를 놓았다.


머리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몸은 이미 그 공포를 기억하고 있었다.

사고의 기억은 몸에 남는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몸은 그때의 두려움을 가장 먼저 기억한다.
‘이제 괜찮다’는 머리의 말보다
‘아직 무섭다’는 몸의 감정이 더 강했다.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타면 편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오히려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도 운전을 한다. 이동할 때는 번거롭기는 하지만 편한 점도 있다.
남편이 운전할 때면 창밖만 바라봤다.
그저 조용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그런데 이상했다.


산에서는 낯선 길도 두렵지 않은데,
도로 위에서는 한 발도 내딛지 못했다.
바위 위에서는 두려움을 품고 오르는데,
운전석에서는 그 두려움을 외면하고 있었다.


문득 깨달았다.
두려움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순간’에 자란다는 것을.
지리산의 빗속에서도, 인수봉의 바위 위에서도
나는 내 손으로 버텼다.


하지만 도로 위의 세상은 언제든 변했다.
나의 의지로 막을 수 없는 변수들이 가득했다.
그 통제할 수 없음이, 나를 움츠리게 한 것이다.


요즘은 천천히 연습 중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시동만 걸었다가 껐다가 하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액셀을 밟지 않아도 괜찮았다.
핸들을 살짝 돌리고, 거울을 맞추는 일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쩌면 이게 내 회복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두려움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조금씩 나를 설득하며 사는 일이다.


이젠 안다.
내가 운전대를 잡지 못한 이유는
겁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때의 나를 아직 다 위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천천히
시동을 걸고, 마음을 붙잡는다.
다시 나의 길 위로 나아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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