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를 피하지 말고, 천천히 들여다보는 법.
북한산 인수봉.
그 이름은 오래전부터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2018년 봄, 출장길에 처음 혼자 북한산을 올랐다.
국립공원이라 ‘안전하겠지’ 싶었고,
주말이면 사람들이 붐비니 혼자라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백운대에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가팔랐다.
바위에 손을 짚을 때마다 다리가 떨렸고,
아래를 내려다볼수록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래도 끝까지 올라 백운대 정상에 섰다.
그때였다.
멀리서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바위, 그 위에 점처럼 보이는 사람들.
“저기는 어디예요?”
“아, 저긴 인수봉이에요. 암벽등반 하는 사람들이에요.”
“사람이 저기 올라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들을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그저 바라볼 뿐, 감히 닿을 수 없는 곳.
하지만 세상은 종종 그런 불가능의 자리로 나를 이끌곤 한다.
몇 해 뒤, 산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산림교육원 ‘숲길 등산지도사 과정’을 수강했다.
그 안에 ‘암벽등반 체험’이 있었다.
처음 마주한 바위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손끝으로 닿는 바위의 온도,
그 차가운 표면이 오히려 이상하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두려움보다 더 강렬한 감정이 있었다.
“이 느낌, 알고 싶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블랙야크 아카데미의 인수봉 등반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꿈, 이루어드립니다.”그 문구 한 줄이 나를 이끌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짧다고 하기엔 길고, 길다고 하기엔 설렘이 컸던 여정이었다.
4회의 교육을 받고 인수봉을 오른다는 일정이었다.
지인들은 걱정스레 물었다.
“그거, 진짜 괜찮겠어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아직은 몰라서 안 무서워요.”
그리고 정말 그랬다.
처음 실내 암장에서 하강 연습을 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줄 하나에 매달린 채 울었다.
발을 떼지 못하고, 손이 땀으로 흥건했다.
하강을 마치고 바닥에 닿자, 펑펑 울었다.
그런데 신기했다.
겁이 많은 내가, 끝내 그 줄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디어 인수봉에 올랐다.
강사님 세 분, 그리고 함께한 세 명의 청춘들.
한 피치, 또 한 피치.
바위는 생각보다 높았고, 바람은 거셌다.
손끝이 아프고 다리가 떨릴 때마다
위에서 들려오던 말.
“괜찮아요, 믿고 올라오세요. 제가 잡고 있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씩 안심이 되었다.
위의 사람을 믿고, 줄을 믿고, 나 자신을 믿는 법.
그날, 나는 그걸 배웠다.
정상에 오르자 모두 영혼이 빠진 얼굴로 웃었다.
백운대에서 바라보던 인수봉,
이제는 그 인수봉 위에 내가 있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달라진 건 나였다.
몇 년이 흐른 뒤, 나는 등산을 다시 배우고 싶어
한국등산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산우들과 함께 ‘고독의 길(9 피치)’을 올랐다.
두려움은 여전히 내 안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 가는 존재로 받아들였다.
추락이 두려워 멈춘 순간,
뒤에서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더 자신을 믿어봐요.
위에서 보고 있으니까 괜찮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알았다.
두려움이란 나를 막는 벽이 아니라,
나를 일으켜 세우는 또 하나의 손이라는 걸.
지금도 나는 안다.
나는 여전히 겁이 많다.
하지만 그 겁을 품은 채,
또 다른 나를 만나러 다시 바위를 오를 것이다.
두려움보다는 자만하지 않고,
나를 믿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믿으며,
겁내지 말고 오르면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