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길 위에서 나를 단련하다

: 몸이 기억하는 용기는 하루의 끝에서 자란다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퇴직 후에도 나는 여전히 길 위에 있다.
주말마다 함께 걷던 길을 이제는 주중에도 걷는다.
남파랑길, 해파랑길, 그리고 이름 모를 마을 길들.
길은 언제나 다르지만, 내 마음은 점점 닮아간다.

함께 걷는 회원 중 한 분이 말했다.
“리더님, 예전엔 그냥 걸었는데
요즘은 걸을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들어요.
이 길이 있어서, 또 함께 걷는 사람이 있어서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뭉클했다.
걷는다는 건 단순한 운동이 아니었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일,
그 속에서 조용히 나를 단련하는 일이었다.


길 위의 시간은 참 정직하다.
꾸준히 걷는 사람만이 도착한다.
누군가는 빠르게 걷고,
누군가는 잠시 멈춰 선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함께 도착한다.

나는 늘 느린 쪽이었다.
빠르게 걷는 사람들을 보며 조급해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의 속도로 걷는 것’이 가장 나다운 길이라는 것을.
누군가를 따라가느라 내 걸음을 잃는 일보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길 위에서 나는 많은 걸 배웠다.


누군가의 발걸음에 맞추어 걷는 법,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법,

그리고 내 몸이 기억하는 리듬을 믿는 법을.


지난주, 해파랑길 11코스를 다시 걸었다.

이 길은 혼자, 때로는 회원들과 함께

이미 여러 번 걸은 길이다.


경주 나아해변에서 감포항까지,

신라 문무대왕릉과 감은사지
바다와 역사가 나란히 걷는 해안길 약 17km이다.


파도가 철썩이며 바위를 두드리는 소리에
자꾸만 발걸음이 멈췄다.
“아, 이거지.”
나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하늘은 맑고, 바다는 끝없이 이어졌다.
몸은 분명 지쳐 있었는데,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가벼웠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말하는 듯했다.
“괜찮아, 지금 이대로도 충분해.”

걷다 보니 깨달았다.
회복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그저 한 걸음을 내딛는 데서 시작된다는 걸.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하늘을 바라보고,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그게 회복이었다.


나이 들어가며 알게 된 게 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도

마음이 자주 흔들려도 괜찮다는 것.
삶은 늘 완전하지 않다.
하지만 불완전하기에 더 단단해진다.

얼마 전 친구가 말했다.
“너는 참 꾸준해. 그게 제일 대단한 거야.”
그 말을 듣고 괜히 울컥했다.
사람들은 화려한 성공보다,
묵묵히 자신을 세워가는 사람에게서
진짜 용기를 배운다.


바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늘 같은 대답을 건넨다.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

멈춤은 실패가 아니라고,
그건 다시 나아가기 위한 준비라고,
지리산에서, 인수봉에서, 그리고 지금 이 길에서도
나는 그 말을 듣는다.


해가 저물어 갈 때,
파도와 바람이 교차하던 그 길 위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말로 다짐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기억하는 용기가 있다는 것을.

두려움이 남아 있어도 괜찮았다.
이미 내 안에는
그 두려움을 품고도 걸어온 기억이 있으니까.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길 위에서,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리고 내 안의 고요함 속에서.

걷기는 나를 단련시키는 또 하나의 배움이었다.
내가 리더가 된 건
앞서 걷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걷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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