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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동 Nov 20. 2020

여행의 이유

가고 싶다

코로나! 나는 끄떡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포브스 선정 ‘약속이 깨지면 내심 쾌재 부르기부문 안양 1등에 랭크한 인간 이재동이는 BC(기원전 아니고 Before Corona)부터 그렇게 살아왔거든요. , 사실 일상은 크게 변한  없다고 느낍니다.  영상들 속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모습을 보고 뭔가 어색하다가 부러워지는 정도지요. 업무 특성상 외부활동이 잦아 어쩔  없이 나가야만 하니 어느 순간 마스크도 무덤덤해졌습니다. 결국 커피도 마시러 다니고 맛집도 찾아다닙니다.  서는  피하는 편이지만 그건 BC였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약간 불편해진 일상이야 참아줄 만합니다. , 비일상적인 부분에선 아니더라구요.

여행을  갑니다. 국내여행으로 충분히 대체할  있지 않느냐 되물으시겠지만은 못한다고 당당히 이야기할  있습니다. 저에게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입니다. 단순히 다른 곳에 다녀오는  아닙니다. 아주 완전한 도피. 한국어조차 들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얼마 전에 다녀온 제주도, 물론 좋았습니다. 드넓은 바다, 맛있는 음식, 멋진 카페…….  내가 6년이나 여길 미뤄뒀을까 싶었는데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선 마음속 어딘가가 공허해지더라구요.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에어비앤비의 카피.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그겁니다. 1 2일이 되었든   살기가 되었든 아예 다른 세상에서 지내보는 것이죠. 제주도로는 그걸 채워주지 못했구요. 어쨌든 한국이잖아요.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여행은 살아보는 , 좋습니다. 그러면  살아보러 떠나야 할까요?  돈으로 다른  해도 좋지 않을까요? 다들 아시다시피 여행은 수지타산이 정말 꽝인 장사입니다. 일단 여행지에선 소비 감각이 마비되지요. 한국에서라면 커피   마시고 일어날 자리인데 여행 와서는 괜히 디저트도 시켜 보고, 건너편 테이블에 맛있어 보이는 것도 주문해 보고. 음식으로만 예를 들었는데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추억이라는 미명 아래 낭비벽만 도지죠. 돌아와서도 어떻습니까. 유명한 여행 작가들처럼 일생이 변화될 만큼의  무언가를 얻어왔나요?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있습니다. 나는 진짜 극한까지 돈을 펑펑 써댈  있는 사람이구나를 체험할  있었던 n일의 여행이였다구요. 좋게 보면 내면을 바라다보는 시간이라고   있겠습니다만은 너무 꿈보단 해몽이죠. 그렇다면 식견이 넓어지나?  모르겠습니다. 유명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본다 한들 예술적 분별력이 날카로워지나요? 아니요. , 정말  그렸다 정도밖에 생각이 들지 않더라구요.  모나리자 같은 엄청 비싼 작품들은 대부분 가품을 걸어놓고, 진품은 창고에 숨겨져 있다면서요. 그러면 핸드폰 액정 너머로 보는 것과  차이가 없지 않나요. <테넷>  정도나 되어야 이게 ‘인지 아닌지 알죠. 세계적 명승지에 가서도 엄청난 감동을 받았나요? 아니요. ‘정말 엽서 같은 풍경이다라는 감상에 그쳤어요. 정말 가성비가 떨어집니다. 여행  돈이면 옷이  벌인데요. 친구들에게  턱을   있는데요. 추운 겨울 조금이나마 따듯하게 보내시라고 부모님께 구스다운 패딩에 내복까지 세트로 맞춰줄  있는데요. 여행 그거  갑니까?

언젠가 그런 글을 썼었습니다. 주마등이란  죽음의 위기에 봉착했을  뇌가 평생의 기억을 촤르르 훑으며 생존방법을 찾아낼  보이는 동영상 같은 것이라면, 오래  사람의 주마등이 당연히  것이라구요. 그런데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백세 인생인들 주마등 러닝 타임이 길겠는가, 그렇다면 과연 그는 오래  것이라 말할  있겠느냐, 라는 내용이었어요. 이재동식 주마등 논리라면   살았더라도 다양한 경험들을 했었던 사람을 장수했다고 보는  맞지 않을까요? 아이패드 구매를 위해 만들어낸 궤변이긴 한데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하며 삽니다. 주마등이 인생 마지막 순간의 선택지를 나열해준다면, 여행은 코로나마저도 영향을 주지 못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선다를 늘려줍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은 엄청 소소한 건데요. 예컨대 가끔은 아침식사로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를 먹어볼 수도 있는 거구요.  여행  가도 매체로 접할 수도 있지만,  조식엔 이야기가 깃들어 있잖아요. ‘진짜 영국 음식이라곤 먹을  하나 없었는데 그나마 아침은 봐줄 만했지같은 거라던가, ‘그때는 식후에 홍차도 곁들였던  같은데, 다음엔 차도  우려 봐야겠다같은 거요. 일탈이 풍요로운 일상을 만들고,  풍요롭던 하루가 평범해져 다시 배낭을 멥니다. 추억과 공허의 마리아쥬가 여행이라는 선순환의 굴레(지갑에겐 악순환) 만들어 삶의 윤활유가 됩니다.

, 그러면 여행은  살아보러 떠나는 걸까요.  결론은 이렇습니다. ‘오래살아보러 떠나는 거예요!  인생 마지막 영화의 플레이 타임  늘려보기 위한 일종의 투자예요. 그래프가 우상향이 틀림없는데   이유는 없잖아요? 지금의 코로나 시국은 잠깐 군자금을 모으는 기간이라고 생각하려 해요. 언젠가는 끝나게  테니 위해 조금씩 저축하고 있어요. 다시 떠날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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