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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동 May 14. 2020

물려도 다시 한번

벚꽃은 돌아오는 거야


나는 장범준을 그닥 좋아하진 않는다. 싫어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굳이 찾아듣을 필요까진 못 느끼는 정도. 슈스케 나왔을 때야 '와 좋다' 했지만 버스커버스커 1집, 2집을 지나보니 노래가 어쩐지 전부 비슷비슷하지 뭔가. 물렸다, 라는 표현이 어쩌면 적절하겠다.


내가 아무리 밀어낸다 한들 장범준을 떼어놓기는 어렵다. 지나간 씬들엔 그의 노래 여러 곡들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대학 신입생 시절엔 기타로 '꽃송이가'를 연습했다. 그때만 해도 물리기 전이였으며 그리 복잡하지 않은 코드진행에 이 정도라면 나도 쳐볼만 하겠다 싶었으니까.

훈련소에서도 불렀다. 장범준과 신병은 썩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 어쩌다 부르게 됐냐? 3월 3일에 입대한 나는 5주차인가 6주차인가에 행군을 했고, 당시 논산의 바람은 벚꽃을 휘날리기에 충분했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굴렀던 훈련들을 거의 마무리해가던 그때의 기분탓이었을까, 얼굴의 위장과 흘러내린 땟국물과는 영 어울리지 않던 선선한 춘풍 덕이었을까. 누군가 가사를 흥얼거리기 시작했고, 전염된 봄바람 덕에 실없게도 행군 간에 군가를 그만 벚꽃엔딩으로 실시해버렸다. 잠시나마 훈련병이었음을 잊었었다. 뭐, 발걸음이 가벼워지진 않았지만.


TV에서, 길거리에서, 백화점에서. 듣고 싶지 않아도 그의 노래는 흘러나온다. 나만 질렸나 싶어 주위에 물어봐도 웬만하면 비슷한 생각이란다. 아, 다들 그렇게 느끼는구나! 내가 힙스터병 걸린 건 아니구나 싶어서 안도하다가도 막상 드라이브 하다가 조수석에서 장범준 노래 틀면 십중팔구는 따라불러제낀다. 물리니 질리니 어쩌고 저쩌고 떠들어대도 결국은 부르고 있고, 그만큼 흥얼거리기 좋은 가사와 멜로디를 만들어낸다. 장범준, 음악 참 잘 한다. 연금, 부럽다.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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