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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동 Apr 10. 2020

심신미약엔 운동을

홈트로 사회적 거리두기

 29, 30, 31……32라고. 연속된 숫자에서 무엇이 생각나시는가? 가수 별의 <12월 32일>을 생각했다면 경기도 오산. 정답은 늘어만 가는 내 바지 치수다. 나도 이럴 줄은 몰랐다. 고등학생 때 신체검사만 했다 하면 저체중이 나왔는데, 지금은 과체중까진 아니지만 평균보다 약간 무거운 상태. 고딩은 10년 전 이야기니 물론 오래되었기야 했다만 이런 페이스로 질주하다간 조만간 마라토너 되게 생겼다. 42 사이즈도 있을까? .195는 빼주길 바란다. 마지막 자존심이니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건 꽤 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체감하는 건 역시나 옷을 살 때. 새것이 물론 좋긴 좋다만 제값 주고 사기엔 가난하니, 나는 상태 좋은 중고물품을 애용하는데 이 중고 특성상 시착이 어렵다. 환불도 매우 귀찮은 일이다. 그러니 정확한 신체 치수를 알아야 네고 없는 쿨거래를 할 수 있는데 시시각각 변하는 허리둘레가 자꾸 방해하지 뭔가. 게다가 옷맵시도 안 살고. 입대 전, ‘사회에서 즐기는 마지막 OO’ 핑계로 주지육림을 누리던 시절 찍었던 70kg 후반대의 악몽이 슬슬 떠오른다. 살이 안 찌는 체질인 줄로만 알고 과음과식의 일상화를 이루어냈던 시절인데, 실제로 고등학교 때엔 하루에 5끼를 먹고도 말라깽이 상태를 유지했으니 그렇게 생각해도 무리는 아니잖은가? 현실은 성장호르몬 덕택에 다량의 칼로리가 전부 키로 갔던 것이지, 다 커서도 그렇게 먹어대면 결론은 불 보듯 뻔하다. 삼시세끼로 모자라 삼시오끼를 찍어댔으니 옆으로 쭉쭉 커버릴 수밖에. 나영석 PD도 이런 건 못 찍는다.


 작년 여름, 반팔 티를 두 겹으로 입어야 겨우 가려지는 뱃살을 보며 ‘이젠 정말 운동뿐이야’라는 결심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삼 주쯤 달리다 귀찮다고 안 달렸다. 특급전사를 따냈던 과거의 영광으로 시작한 새벽 달리기는 무관심으로 방치했던 육신의 한계를 처절히 깨닫게 해 줬다. 3km는 그냥 가뿐하게 뛰었었는데 2km쯤부터 무릎이 아프질 않나. 숨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힘들지 못하게 또 발을 멈춰, 내가 왜 이러는지, 대체 뭘 먹었는지, 오늘 먹었던 모든 닭 저 하늘 위로. 한 번도 안 했던 말, 달리며 할 줄은 나 몰랐던 말, 나는요, 치킨이 좋은 걸 어떡해. 가 아니라 아무튼 아이유 노래처럼 좋은 날은 다 갔다는 걸 온몸이 말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거친 숨을 몰아쉬고 나서야 알았다. 살을 빼기 위한 운동이란 걸 해본 적이 없었던 지난날이 축복이었음을. 어김없는 의지박약 발동에 안양천 러닝은 결국 흐지부지되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거의 매일 홈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아마 6주쯤 됐을 거다. 그땐 꼴랑 3주였으면서 어떻게 지금은 6주나 되었냐고? 간단하다. 여름이 다가오니까! 겨울은 가리는 계절이지만, 여름은 아니다. 티셔츠로 삼겹살을 만들 순 없잖아. 체중계가 없어서 수치를 확인하진 못하지만, 눈바디로 어림짐작한다. 거울 보니 조금 빠진 거 같은데 정확히 모르겠다면 바지를 입어보면 된다. 허벅지와 허리가 약간은 느슨해졌다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큰 차이가 느껴지진 않지만 운동하기 전보다는 편한 거 같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일어났다. 의(衣)뿐만이 아닌 식(食)과 주(住)를 점점 개선하고 있다. 먼저 식습관의 개선. 늦은 밤에 먹는 걸 자제하고 있다. 아침에 속이 불편하던 것이 확실히 없어졌다. 운동한 게 아까운 것도 참게 되는 이유다. 운동이 끝나고, 야식을 먹어왔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며 털썩 쓰러지게 만드는 (입 밖으론 욕도 내뱉음. 보통은 ‘흐힣ㅠ XX’정도) 허벅지의 격통이 배민을 키려는 나를 엄습해온다. 또, 파스타를 거의 매일 먹게 된 시점과 운동을 시작한 시점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원동력이 됐다. 올리브유를 두를 때마다 ‘이거 운동 안 하면 삽시간에 돼지 되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만치 넣지 않으면 맛이 없다. 진짜로! 맛있게 먹긴 먹어야겠는데 뚱뚱해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 유지를 위해 비루한 몸뚱이로 버피 테스트를 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전보다 면의 양을 반으로 줄였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발전!(글쓴이는 비빔면을 3개씩 먹었다)

 

 두 번째, 생활습관의 개선. 방이 더 깔끔해졌다. 항상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으나 아무래도 귀찮아 침대, 의자, 소파는 거치용으로, 바닥은 진열공간으로 사용했었다. 그래도 치우고 살긴 했는데 지금만큼은 아니다. 코로나라는 범세계적 재난은 사회적 거리두기(토막상식. WHO에선 ‘물리적 거리두기’라고 용어를 바꾸길 권장)라는 운동을 만들어냈으나, 집에 있길 좋아하는 나이기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거라 믿었었다. 착각이었다. 마스크 끼고 안양천을 뛰기가 겁나니 집에서 각종 맨몸운동을 하는 것으로 극적 타결을 봤다. 층간소음의 주범이 될 순 없으니 요가 매트를 펴야만 했는데, 옷가지로 뒤덮인 바닥엔 공간이 없었다. 어질러져 있던 바닥을 치웠더니 왠지 소파가 거슬리고, 소파를 치워놓으니 침대가 거슬리지 뭔가.

전용 헬스장. 나름 치웠음.

연쇄거슬림마는 결국 집안 곳곳의 지저분함을 참지 못하고 죄다 정리와 청소를 해버렸다. 한 번 말끔히 치워놓으니 상쾌했다. 이 상태를 쭉 유지하고 싶었다. 같이 사는 동생에겐 안됐지만 운동하기 전보다 청소를 자주 하고, 시키고 있다. 게다가 생활패턴도 좋아졌다. 아무리 매트를 깔고 한다 해도 과격한 동작은 필시 아랫집에 고통을 준다. 오전이나 이른 오후에 하는 것이 현대인의 미덕이다. 기상 시간을 앞당겼다. 자연스레 잠드는 시각도 당겨졌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바른 어른이가 된 것만 같은 기분. 슬기로운 백수생활을 보내고 있다.


 가장 가까운 목표는 6월이다. 당장은 불편해서 손이 잘 가지 않는 바지를 여름의 시작과 함께 다시 한번 입어볼 예정이다. 부디 맞았으면 좋겠다. 최근 의지가 다시 약해지고 있어 과연 이룰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어딘가에라도 이렇게 ‘나 운동 중입니다’라고 공표해야 남 보기 부끄러워서라도 운동하지 않을까 싶어서 기록을 남긴다.


 나, 다시 돌아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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