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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동 Feb 02. 2020

나는 ‘라이더’로소이다

2017년 과제 제출을 위해 작성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살고 싶었다. 금문교도, 나파벨리의 와이너리도 물론 좋지만 1순위는 자전거 때문이었다. 3년 전쯤이었을까, 네이버 블로그 서핑을 하다 본 글이 계기였다. 금문교를 자전거를 타고 넘어가서 소살리토를 보고 오는 자전거 투어. 평소 자전거를 좋아해 기분 내키는 날이면 혼자서도 양화대교를 찍고 오는 나에겐 정말 꿈의 도시처럼 보였다. 게다가 그곳은 자전거 탄 배달부도 상당히 많다고 한다. 단순한 꽃 배달부터 기업의 청사진까지 그 품목은 무궁무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버는데 체력도 강화한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그야말로 꿈의 도시, 샌프란시스코.


하지만 현실적으로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산다는 것은 무리였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행복한 상상에서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런데 최근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평소 시계 정도로만 사용하던 핸드폰에 진동이 울린 것이다. 뭔가 하고 들여다보니 친구가 일 하나를 같이 하잔다. 평소 연락이 잦던 녀석은 아니기에 ‘이거 다단계 장사(판매)에 빠졌나’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그러나 들어보니 꽤나 흥미로운 일이라 구미가 당겼다. 미국에서 성행하는 어플 ‘우버이츠(UberEATS)’이야기였다.


본래 카풀 앱으로 시작한 ‘우버’는 배달대행 서비스까지 그 저변을 넓혔다. 그렇게 탄생한 우버이츠는 종래에 배달을 지원하지 않던, 고급 레스토랑부터 동네 맛집까지 배달을 점차 확대하는데, 최근 우리나라에까지 그 사업을 넓혔다. 독특한 시스템은 배달원들이 어플리케이션과 고용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라이더(배달원)가 자신이 원할 때 주문을 받고 일을 하는 점이다.

  

최근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귀농을 하시는 바람에 강제로 독립을 당한 나에겐 꽤나 알맞은 일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 하던 주말 카페 아르바이트로는 생활비가 부족해 공강에도 일을 하기로 결심했지만 월, 금 이틀만 구인을 하는 곳은 없어 난처해하던 차에 마침 연락이 온 것이다. 그래서 지난 달, 우버이츠 라이더용 어플리케이션 ‘우버드라이버’에 자전거 배달부로 신청을 했다. 등록되었다는 문자를 받자마자 강남 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배달용 보냉·보온 가방을 수령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서울 일부 지역에서만 어플리케이션이 지원된다는 것이다. 일을 하려면 해당 지역구에서 대기를 하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수락을 해야 하는데, 강남에서 안양까지는 지하철로 1시간 거리다. 게다가 집에 있는 자전거를 강남까지 가져가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주문이 들어오기까지 마땅히 기다릴 공간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게 된다. 콜(주문)이 들어오지 않는 날이라면 애꿎은 커피 값에 교통비만 날아가는 거다.


그러나 자전거 운반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해결했다. 서울시의 공공자전거 서비스 ‘따릉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30일 기준 이용료가 7천원이고, 1회당 60분 이내로 사용한다면 일일 이용 횟수에는 제한이 없으니 배달하고 반납하면 그만이었다.

 

얼마 전엔 잊었던 인연도 닿았다. 가로수길에 위치한 레스토랑의 브런치를 배달했는데 수령인 얼굴이 너무 익숙해서 자세히 보니 이게 웬걸, 군대 8개월 선임이다. 근처 공원에서 내가 배달한 음식을 나눠먹으며 ‘임병장’ 총기사고 때 출동한 이야기, 포상휴가 한 번 따보겠다고 밤샘 철야작업 한 이야기 등 보따리를 풀다보니 어느새 밤이 됐다. 덕분에 얼마 벌진 못했어도 그날따라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어찌나 가볍던지.


나의 샌프란시스코는 멀리 있지 않았다. 다가오는 한글날에도 비즈니스 상 출장을 다녀와야 한다.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다 보면 힘들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노래에 리듬을 맞추어 페달을 밟으면 금세 도착한다. 대체 뭘 하기에 강남에 그렇게 자주 가냐, 애인이 생겼느냐. 최근 잦은 출장 탓에 친구들이 묻는다. 그럴 때마다 등에 맨 가방 사진을 보내주며 말한다. ‘나는 라이더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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