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ie Holiday 그리고 얄미운 Moonglow...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는다.
늦은 저녁이다. 막차가 끊기기 전에 나가서 그녀를 만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느닷없이 온 삐삐 내용에는 만나자는 짧은 메시지만 담겨져 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가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는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내 친구들은 몰랐겠지만 나는 당시 CC였다. 굳이 비밀 연애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어찌어찌 그렇게 되었다. 나는 내 여자친구가 그 해 수능을 봤다는 사실을 우연찮게 알게 되었다. 1학년 다니면서 항상 나에게 하던 말은 그거였다.
"나랑 공대는 맞지 않는 거 같아...."
수능 그 날 밤 뉴스에서는 내 눈을 의심할 장면이 나왔다.
날씨가 추워 손을 비비고 있는 그 여자. 설마 내가 알고 있는 그 여자는 아니겠지 하면서도 그 짧은 순간 뇌리에 스친 건 커플링.
나는 이 메세지와 그 후의 만남이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을 하며 나갔다.
먼저 기다리고 있던 그녀. 난 약속 시간보다 무려 20분을 먼저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만큼 그녀는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난 항상 약속시간보다 20분을 먼저 왔다. 그녀를 기다리는 그 순간이 좋아서 그녀를 기다리는 그 20분이 너무나 좋아서....
"왜 너는 항상 20분 먼저 나와있어?"
그 질문에 항상 나는 웃기만 했었다. 그런 그녀가 먼저 나와 있던 것이다.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무엇으로 먼저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낸다.
"나 이번에 수능 봤어. 그리고 난 학교를 옮길 거야."
"그래.. 알고 있어."
"!!!!"
놀란 눈치다. TV에서 널 봤다는 나의 말에 우린 둘 다 웃었다. 그 상황이 좀 웃기긴 했다.
"어쩌면 지금처럼 너랑 같이 다니기 힘들 거야"
"그래..."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그냥 수긍할 수밖에 없던 내 자신이 참 초라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니가 원하는 과에 가면 좋을 거야. 너 공대 다니는 거 힘들었잖아?"
"응. 내가 하고 싶었던 거 하려고. 디자인 말이야."
그 이후에 우리 둘은 그냥 커피숍에서 아무 말없이 그렇게 보냈다...
창 밖에는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Moonglow가 환하게 비치고 있다.
저 달이 얄밉게 느껴진다...
정말로 얄밉게...
그렇게 1997년 11월 어느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마치 쓸쓸한 겨울이 나에게 오듯이 그 해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올해는 역시 Billie Holiday의 탄생 100주년이다. 그래서 수많은 뮤지션들이 그녀의 탄생을 축하하는 많은 이벤트들이 있었고 관련 음반들도 제법 나왔다. 이 곡 참 좋아했다.
1952년 <Solitude>라는 음반에 수록된 곡이다.
지금도 이 곡을 들으면 그때가 떠오른다.
그래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넘의 Moongl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