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uSicEssa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의기쁨 Nov 30. 2015

Moonglow

Billie Holiday 그리고 얄미운 Moonglow...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는다.

늦은 저녁이다. 막차가 끊기기 전에 나가서 그녀를 만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느닷없이 온 삐삐 내용에는 만나자는 짧은 메시지만 담겨져 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가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는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내 친구들은 몰랐겠지만 나는 당시 CC였다. 굳이 비밀 연애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어찌어찌 그렇게 되었다. 나는 내 여자친구가 그 해 수능을 봤다는 사실을 우연찮게 알게 되었다. 1학년 다니면서 항상 나에게 하던 말은 그거였다.


"나랑 공대는 맞지 않는 거 같아...."


수능 그 날 밤 뉴스에서는 내 눈을 의심할 장면이 나왔다.

날씨가 추워 손을 비비고 있는 그 여자. 설마 내가 알고 있는 그 여자는 아니겠지 하면서도 그 짧은 순간 뇌리에 스친 건 커플링.


나는 이 메세지와 그 후의 만남이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을 하며 나갔다.

먼저 기다리고 있던 그녀. 난 약속 시간보다 무려 20분을 먼저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만큼 그녀는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난 항상 약속시간보다 20분을 먼저 왔다. 그녀를 기다리는 그 순간이 좋아서 그녀를 기다리는 그 20분이 너무나 좋아서....


"왜 너는 항상 20분 먼저 나와있어?"


그 질문에 항상 나는 웃기만 했었다. 그런 그녀가 먼저 나와 있던 것이다.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무엇으로 먼저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낸다.


"나 이번에 수능 봤어. 그리고 난 학교를 옮길 거야."

"그래.. 알고 있어."

"!!!!"


놀란 눈치다. TV에서 널 봤다는 나의 말에 우린 둘 다 웃었다. 그 상황이 좀 웃기긴 했다.


"어쩌면 지금처럼 너랑 같이 다니기 힘들 거야"

"그래..."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그냥 수긍할 수밖에 없던 내 자신이 참 초라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니가 원하는 과에 가면 좋을 거야. 너 공대 다니는 거 힘들었잖아?"

"응. 내가 하고 싶었던 거 하려고. 디자인 말이야."


그 이후에 우리 둘은 그냥 커피숍에서 아무 말없이 그렇게 보냈다...

창 밖에는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Moonglow가 환하게 비치고 있다.

저 달이 얄밉게 느껴진다...

정말로 얄밉게...



그렇게 1997년 11월 어느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마치 쓸쓸한 겨울이 나에게 오듯이 그 해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올해는 역시 Billie Holiday의 탄생 100주년이다. 그래서 수많은 뮤지션들이 그녀의 탄생을 축하하는 많은 이벤트들이 있었고 관련 음반들도 제법 나왔다. 이 곡 참 좋아했다.

1952년 <Solitude>라는 음반에 수록된 곡이다.

지금도 이 곡을 들으면  그때가 떠오른다.


그래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넘의 Moonglow....

매거진의 이전글 눈 오는 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