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허세다

허세의 추억

by 나의기쁨

때는 1991년 교회를 다니던 나는 중학생이 되면서 중고등부로 옮겨갔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오랜 기간 치던 나는 중고등부로 넘어오면서 피아노가 아닌 다른 악기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통기타, 드럼, 베이스 같은 악기들을 연주하고 찬양하는 것을 보고 통기타가 얼마나 멋지게 보이던지...


예전 김태원을 대중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라디오스타>에 김흥국과 출연했던 그 전설적인 방송에서도 김태원이 했던 얘기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이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 Led Zeppelin의 'Babe, I'm Gonna Leave You'를 귀로 카피해서 연주했다는 이야기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중고등학생들에 대한 헌사라고 생각될 정도이다.


처음 나의 생각은 이랬다.


'피아노 오래 쳤잖아? 기타 까짓 거 금방 쳐 재끼겠지?'


하지만 택도 없는 소리이다.


그동안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서 연습을 했던 그 고통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옛 속담은 진리라는 사실을 그 어린 나이에 깨달으며 좌절할 때 보였던 악기는 바로 베이스!


딸랑 4줄짜리 악기가 어려워봐야 얼마나 어렵겠어?


그렇게 고통의 시작이 되었다.




1994년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고 당시 천리안 통신을 할 때 어느 방에서 베이스를 친다는 소리에 어떤 형님이 Jaco Pastorius를 소개했다.


"동상, Donna Lee를 치면 내가 인정해 줄게! 넌 크게 될 수 있어!"


고등학교 때 밴드를 구성해서 베이스를 치던 당시 16비트, 8비트 셔틀러가 돼버린 나에게 베이스라는 악기는 참 재미없는 악기였다.


앰프가 없으면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뿐더러 슬랩이라는 테크닉을 모르던 당시에는 이만큼 재미없는 악기는 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통기타나 일렉 기타보다는 크기면에서 좀 더 크고 길쭉해 보이는 게 약간 간지가 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용돈모아 어찌어찌산 Jaco Pastorius의 첫 데뷔작 <Jaco Pastorius>를 듣고 며칠 동안 잠을 못 이뤘다.


'뭐야 이거? 베이스로 솔로를 연주하네? 근데 어떻게 쳐야 할지 전혀 감을 못 잡겠네??'


음은 또렷이 들리긴 하는데 이런 템포로 연주하는 게 가능하긴 한가라는 고민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그 뒤로 이어지던 모든 곡들은 당시로서는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아 됐고, 그냥 폼이나 멋지게 잡으면 그만이야~'




1997년 대학교는 공대 쪽으로 가게 되었다. 사실 내가 원하는 과는 아니었다.


아버지 사업의 영향으로 건축 쪽을 생각했지만 수능에서 첫 400점대로 이전과 달리 통계가 없어서 담임들이 대부분 하향 지원을 하던 때였다.


하긴 이전의 통계가 들어맞지도 않을뿐더러 그 당시의 수능 난이도 실패로 인해 우왕좌왕하던 격동의 시기로 나에게는 기억이 된다.


그저 이성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었다는 이유만으로 악기를 배우고 처음 재즈를 듣기 시작했던 학창 시절을 지나 대학생이 되었을 때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Kiss의 Gene Simmons가 캐나다 밴드였던 Rush가 맘에 들어 자신의 오프닝 밴드로 데리고 다닐 때 그가 했던 말은 잊혀지지 않는다.


"비단 락스타라면 밤에 파티를 열고 좌우로 이성을 끼고 놀아야 정상이 아닌가? 근데 그 친구들은 너무 조용해. 그래서 난 그들이 게이인 줄 알았다고"


대학교 때는 바로 그 락스타를 꿈꿨던 것이다!!!


정말 단순한 넘


그럼에도 재즈를 꾸준히 들었는데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남들 다 소주, 맥주, 막걸리 마시는데 나 혼자 와인 마시는 느낌?
바로 이런 허세가 부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저 좀 잘 알려진 재즈 스탠다드를 나불대면서 아는 체하면 미팅 때 이게 먹힌다는 것이다!!


다들 '그런 음악을 듣는다니 멋지다'는 반응을 보면서 좋아라 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멋지다'는 반응의 유통기간이 미팅 당시뿐이라는 게 문제였다.


미팅이 끝나고 다음 날 애프터 한답시고 맘에 드는 이성한테 삐삐 치면 '제 누구였지?'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이렇다니깐!


그래도 그 허세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군제대 이후 복학을 하고 나서 나에게 꿈이 하나 생겼다.


바로 재즈 베이시스트가 되는 것!


콘트라 베이스를 멋지게 연주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왔다.


이것도 허세라면 허세겠지.


하지만 같이 버클리 음대를 준비하던 기타 치는 친구가 학교를 때려치우고 종교에 귀의하면서 나의 꿈도 거기서 멈췄다.


실제로 둘 다 붙긴 했지만 장학생이 아니라 실제로 갔을지도 의문이다.


결국 주도적이지 못했던 나의 삶은 그렇게 어떤 꿈도 야망도 없이 흘러갔다.


이런 내가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됐다.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나에게 우연한 기회로 전공과는 상관없는 일을 무려 3년간 했다.


그때 나는 재즈 음반을 모으고 인터넷 방송을 취미 삼아 해 왔다.


유행하던 싸이월드에 '페이퍼'라는 공간이 생기면서 네이버 블로그가 유행할 때도 하지 않았던 음반 리뷰를 멋진 사진들과 음악을 통해서 '나 이런 음반 있고 이런 음악 들어'라는 나름대로의 허세를 부리며 글을 쓰다가 MMJAZZ에 리뷰를 쓰게 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그래도 음반 리뷰 자체는 굉장히 진지하게 했기 때문에 공부가 상당히 됐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다!


허세를 부리더라도 저거 가짜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돈을 벌게 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재즈를 듣는 것이 아닌 컬렉션 개념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MMJAZZ의 어느 컬럼리스트분의 집에 놀러 갔다가 그 무수한 LP판을 보고 결심한 건 시디로 만장을 모아 보는 것이었다.


Blue Note의 그 LP들이 눈에 아른거리는 게 어찌나 이쁘던지!




하지만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건 그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서였던 같다.


언제부터인가 재즈라는 것이 나에게는 마치 일상처럼 내 인생에 슬그머니 끼어 들어온 것을 깨달았을 때는 재즈는 그 무엇도 아닌 그저 멋진 음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게 이때즈음이었을 것이다.


딱히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내 생각엔 나의 본격적인 허세는 그때부터 멈췄던 거 같다.


지금은 아내와 딸이 잠드는 것을 보고 늦은 밤 재즈건 락이건 어떤 음악이 되었건 간에 틀어놓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것이 습관처럼 돼버렸다.


그래도 내 맘속 저 깊은 곳에서 꿈틀대며 외치는 한마디가 있었으니!


야! 그래도 재즈는 허세야!!! 허세!!!



The Bill Evans Trio - Polka Dots And Moonbeams (1962년 음반 Moon Beams)


하루 일과를 마치는 의미로 음악을 듣는 것조차도 어쩌면 나에게 부리는 허세인 거 같다.


그래! 뭐 어때 그깟 허세 부려보는 게?



Bill Evans는 내가 재즈를 본격적으로 듣게 된 계기가 된 피아니스트이다.


아마도 재즈를 좀 아시는 분들이라면 Bill Evans의 Riverside 3부작에 대해서 잘 아실 것이다.


뭐 항상 이 <Waltz For Debby>를 가장 먼저 언급하긴 한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반을 꼽으라면 항상 1순위는 바로 <Moon Beams>이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이유가 기억이 나지 않는 건지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는 거다.


야! 이것도 혹시 허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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