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치열한 고요 속을 걷는다
대학생 시절 낚시를 좋아했던 친구를 따라 여러 곳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딱히 낚시를 좋아한 건 아니지만 그곳에서 느꼈던 많은 것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조용히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또는 출출하면 컵라면을 먹는 것이 더 좋았던 그 시간에 내가 정말 좋아했던 것은 그 잔잔한 호수를 한없이 멍하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냐?
고민이 있다면 저 호수에 던져봐.
혹시 모르지?
호수의 물결이 잔잔하게 치다가 조심스레 사라지듯 그 고민도 사라질지?
그때 나의 반응은 이노무 자슥이 갑자기 웬 철학적 사유?라는 표정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표정을 짓고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내 친구도 조용히 웃으며 물고기가 잡히나 호수를 바라보았다.
목적은 다르지만 그 순간만큼은 서로가 같은 방향을 아무 말 없이 쳐다봤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아 진짜! 오늘은 드~럽게 안 잡히네?
전에는 잘만 잡히더니만!
저쪽으로 포인트를 옮겨보자!
하는 친구의 짜증 섞인 말 한마디가 그 치열한 고요 속을 걷던 나를 깨웠다.
마치 꿈을 꾼 듯 오랜 시간이 지난 거 같지만 찰나의 순간이었다.
나도 부랴부랴 낚싯대를 거두고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 자리엔 같은 곳을 바라보던 우리의 발자국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