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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평야의 풍차를 상상하다

잔서스한스의 추억

by 나의기쁨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를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있는가?


사실 나는 이 책을 30대 넘어서 처음으로 다 읽어 봤다.

파편적인 내용만 알고 있어 돈 키호테 데라만차와 그가 타고 다니는 늙은 말 로시난테 그리고 하인인 산초 판자에 대한 기억만 있지 전체적인 내용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정의감 불타는 기사도 정신으로 무장한 라 만차라는 작은 마을의 돈키호테의 여정.

거기에 유명한 풍차와의 대결 이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당시 스페인의 세태를 풍자한 소설이다 또는 당시 기사도 정신을 비꼬는 소실이다 뭐 이런 내용만 알고 있었고 잘 알려진 에피소드만으로 나는 이 소설을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 소설의 마지막 새드 엔딩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아무튼 이 소설을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이 소설에 등장하는 풍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2004년 유럽 여행 당시 친구가 참고하라고 건네준 실제 여행 일지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서 필수로 방문한 곳이 스페인의 라 만차 마을과 네덜란드의 잔서스한스라는 풍차 마을이었다.


실제로 이들 마을은 상상과는 다른 묘한 느낌이 강렬해서 그런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게다가 라 만차에서 풍차와 싸운 돈 키호테의 이야기를 떠올렸을 때는 오히려 잔서스한스와 더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생각 외로 라 만차의 경우에는 그 언덕의 콘수에그라 풍차는 그냥 그랬다.

길도 그렇고 의외로 힘든 여정이었다.


그에 비해서 잔서스한스는 솔직한 느낌으로는 테마 공원 온 느낌이었다.


아무튼 이 두 마을의 풍차는 멀리서 보면 작아 보이는데 가까이 가보면 결코 풍차에 걸릴 수 없는 높이라는 점에서 돈 키호테의 이 에피소드는 확실히 허구라는 생각을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Fabrizio Cucco - The Mill (2020년 음반 For A Brief Moment)


일반적으로 이런 콰르텟 구성의 경우 베이스는 보통 콘트라베이스를 사용하는데 Fabrizio Cucco는 일렉 베이스를 다루는 이탈리아 재즈 뮤지션이다.


이탈리아의 거장 드러머 Roberto Gatto나 색소폰 연주자 Maurizio Giammarco 그리고 이 음반을 통해 처음 알게 된 피아니스트 Pierpaolo Principato의 연주도 참 매력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일렉 베이스가 주는 묘한 질감이 독특한 느낌을 준다.


문득 이 곡을 듣고 라 만차와 잔서스한스가 떠올랐다.

아무래도 소프라노 색소폰이 주는 그 묘하고 아름다운 톤이 주는 느낌 때문인 거 같다.


다시 그곳을 방문하고 싶어졌다.

바람이 참 좋았는데 드넓은 평원이 당시 나를 감싸고 있던 여러 답답함을 한 번에 날려주기도 했었다.


언젠가는 가족 데리고 가 볼 날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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