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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Dec 26. 2015

You've Got A Friend

특별했던 나의 친구

2000년 12월 겨울 '아이러브스쿨'이라는 사이트를 통해서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 계획이 되었다. 건대입구 옆에 있던 우리 학교는 당연히 건대에서 모이기로 했었다.


건대 글방에 책도 볼 겸 일찍 나가서 책을 보다가 이쁘게 생긴 여성이 나한테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야."

"누구... 시죠?"

"나 몰라? 오늘 고등학교 동창 모임 있잖아?"

"음?"


정말 누군지 몰랐다. 지금은 내가 다닌 고등학교가 남녀공학으로 바뀌었지만 당시만 해도 남자 고등학교였다.


"저기.. 전 남자 고등학교 나왔어요"

"풋! 나야 J"

"허... 얼"


충격이었다. 할 말을 잃어버렸다. 내가 기억하는 J는 분명 여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좀 특별했던 친구 J.

J는 1학년과 3학년을 함께 같은 반을 지냈다. 내 뒤에 앉았던 그 친구는 성격이 상당히 조용했다. 말도 거의 하지 않았고 뒤를 돌아보지 않은 이상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정말 조용한 친구였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도 없었다.


의외로 그 녀석이 락음악을 좋아해서 나랑 기타를 치던 k와 상당히 친했다. 당시 고등학교 밴드에서 난 베이스를 쳤고 내가 그 녀석을 드럼 의자에 앉혀놨었다. 그 녀석과는 밴드도 같이 했고 당시 홍대에 있던 '드럭'같은 곳에 같이 놀러 가기도 했고 그 친구 집에 자주 놀러 갔다. J의 아버지는 합기도 관장이었다. 소심한 아들이 친구를 데려왔다고 엄청 좋아라 하셨다. 그래서 1, 2학년 때 공짜로 합기도를 배우기도 했다.


J는 아버지 때문인지 어릴 적부터 합기도를 했었다. 발차기의 대가. 싸움을 싫어했지만 자신을 건드리면 여지없이 발차기로 상대방을 때려눕혔던 친구다. 그래서 1학년 때 일진과의 싸움 이후 어느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던 친구.


난 그날 고등학교 동창모임에 가지 않았다. 그 녀석과 한잔을 나누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브스쿨'에 내가 참여한다고 했기 때문에 아마도 J는 내가 나올 거라고 확신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당시 같이 밴드를 했던 기타 치는 친구였던 k도 오기로 했는데 내가 연락해서 우리 3명은 따로 술잔을 기울였다.

 

"너 고등학교 때 사겼던 남자 있었지? 내가 3학년 때 주번 때문에 교무실 갔다가 알았다. 선생님이랑 너랑 얘기하는 거 다 들었어"


그랬다. 나는 그 당시에 그 녀석이 남자와 사귄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졸업 후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두문 분출했던 사연, 군대 면제받은 이야기, 성전환에 대한 이야기, 그간의 이야기들을 나눴다.


"일본 갈 거야. 아마도 일본에서 계속 살지 싶어"

자조 섞인 한숨과 함께 여전히 조용하게 말한다.


난 그때처럼 장난을 칠 수 가 없었다.

이미 그 녀석과는 알 수 없는 벽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J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Donny Hathaway - You've Got A Friend (1970년 Live)


2001년 하리수가 화장품 광고로 이슈가 되면서 나는 그 녀석이 트랜스젠더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남들이 하리수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할 때 나는 그 친구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최근 코미디 빅리그에서 '여자 사람 친구'라는 코너를 볼 때마다 가끔씩 그 친구가 생각난다.


진짜 '여자 사람 친구'라는 말이 딱 맞는다. 하지만 그 넘은 나를 남자로 보진 않았다고 하니 참 다행이지 싶다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녀석에게 넌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소중한 친구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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