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산책 - 자산시장 폭락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위기 때 돈이 약한 자에게서 강한 자에게로 흐르는 것은 시장의 자명한 이치다. 따라서 단련된 투자자는 안달복달하지 않고 느긋하게 주식을 보유하는 성품을 길러야 한다.” – 찰리 멍거
제주도의 핵심 상업시설이 몰려 있는 제주시 권역은 도로가 서울만큼 막히는 곳이 심심치 않게 있다. 제주시의 가구당 자동차 보유대수가 전국 최고 수준이기도 하려거니와 관광객들이 몰고 다니는 렌터카 수량도 무시 못할 수준이어서 상습 정체구간은 서울 강남 못지않다. 그런 제주시 권역을 관통하는 도로 중에 그나마 속도를 낼 수 있는 도로가 하나 있다. 제주시와 중산간 지역을 가로지르는 '애조로'가 그것이다.
나는 제주시 사는 사람들이 시골이라 부르는 '애월읍'에 살고 있다. 제주시민의 삶은 대부분 20분 생활권이다. 웬만한 공공장소 문화시설, 음식점들 모두가 그 안에 들어온다. 때문에 공항까지 40분 가까이 걸리는 '애월'은 제주시(서울) 사람에게는 지방 소도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됐건 애월에서부터 근무지가 있는 제주시 첨단지구까지 가려면 애조로를 꼭 타야 한다. 신호등과 건널목도 거의 없어서 이른 시간이면 100킬로를 훌쩍 넘겨 속도를 내는 차량들이 부지기수이다. 물론 나도 시야와 안전이 확보된 상태라면 시원하게 가속 페달을 밟는다.
로드 레이지... 평상시에는 얌전한 사람도 운전대만 잡으면 야수로 변한다. 물론 나도 예외가 아니다. 잘 가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끼어들라치면 자리를 빼기지 않으려고 은근 속도를 높인다. 그런 와중에 비좁은 틈으로 바퀴 하나 걸치고 끼어드는 인간들을 만나게 되면 스멀스멀 끓어오르는 분노에 욕 비슷한 것을 내뺃는다. 그러곤 '워워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왜 이러지' 한다.
도로는 인격이 사라진 사물들의 각축장이다.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보이는 건 자동차뿐이라 대상을 향해 마음껏 욕을 해도 미안하지 않다. 그렇게 욕을 한 나이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느림보 거북이'를 만나게 되면 시원하게 앞지르기를 한다. 앞지르기를 하는 순간 묘한 쾌감과 함께 우월감이 찾아온다. '짜식... 답답하게 운전하네' 하면서...
그런데 재미있는 건. 내 앞에 끼어든 얄미운 그 차도 내가 바보 같다며 우습게 보았던 그 차도 어느 순간 같은 정지 신호 앞에 나란히 서 있게 된다는 것이다.
고속도로가 아닌 이상 건널목은 일상이며 정지신호는 다반사다. 순탄하기만 한 것이 인생이 아니듯, 막힘없이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던 도로에도 정차는 존재한다.
모든 것이 실력으로만 해결되지 않고 눈치가 빠르다고 항상 앞서 나가는 것도 아니다. 운이 크게 작용하기도 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값이 나오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장기 레이스에서 내가 가진 차량에 문제가 없어야 하고, 가는 방향이 잘못된 방향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큰 문제없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게 된다.
최근 들어 주식시장, 가상자산 시장이 폭락 중이다. 심한 등락 속에서 쫄딱 망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돈을 벌었다는 사람도 있다. 소액이지만 나 또한 투자 중이다. 나름 저점에 매수했다 안심했지만 바닥이 어딘지 모를 요즘이라 얼마 전부터는 매일 듣던 주식방송도 줄이고 수시로 들여다보던 주식앱도 끊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고 했던가!
투자 한파를 겪자니 투자와 운전에 비슷한 구석이 보인다. 이리저리 칼치기 잘하는 사람이 왠지 운전 잘하고 앞서 나가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기껏해야 3분, 5분 수준이고 이런 부류들이 사고를 일으키고 도로 상황을 악화시키는 주범일 경우가 많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조급함에 이리저리 빠른 의사결정과 매매를 하게 된다. 어느 순간에는 옳은 판단이라 자평하며 돈을 버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크게 잃기 마련이다. 큰 낭패를 보지 않더라도 단기 트레이딩이 수익률 측면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느긋하게 잠시 쉬어가자는 마음에 한 발 물러서 있기로 했다. 도로의 흐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듯이, 경기전망, 주식의 흐름을 정확히 맞출 수는 없다. 더욱이 외국인들과 기관투자자들에 비해 개인이 시장을 분석하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개미들은 뛰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에게도 하나의 강력한 무기가 있다. 그것은 '시간'이다. 개인은 미래를 확신하고 성장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이를 믿고 길게 갈 수 있다. 반면 기관 및 자산운용사는 단기 투자 수익률에 따라 평가받는 집단이므로 장기투자에 있어서는 개인보다 자유로울 수가 없다.
결국 시간을 이기는 장사 없으며 이 어려운 시기 또한 지나갈 것이다.
“시장의 패닉에 절대 즉각적으로 행동하지 마라. 팔아야 할 시점은 시장이 추락하기 이전이니, 추락한 다음이 아니다. 오히려 숨을 한번 깊게 들이쉬고, 조용히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분석해보라.” – 존 템플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