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산책 - 야놀자의 제주지사 설립을 즈음하여...
오랫동안 제주여행 공공플랫폼, *'탐나오'를 운영해오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혹자는 탐나오가 제주 여행업계 생태계를 교란시킨다고 한다. 공격적인 광고비 지출로 제주여행 관련 검색마케팅 비용을 올린다는 이도 있다. 적과 아군도 구분하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시각이다.
* 탐나오 : 제주특별자치도가 지원하고 제주관광협회가 운영하는 여행 예약 공공플랫폼 https://www.tamnao.com/ )
여행, 관광시장의 생태계, 특히 제주여행과 관련된 생태계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고 업종간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빅 블러'의 시대. 여행사가 했던 역할은 이제 누구나 할 수 있는 시대다.
얼마 전까지 해외 OTA(Online Travel Agency) 때문에 제주관광 비즈니스가 위기에 처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고라, 부킹닷컴, 익스피디아를 통하지 않고는 숙박시설을 예약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떠들었다. 코로나를 겪으며 하나투어, 모두투어뿐 아니라 야놀자, 여기어때, 마이리얼트립과 같은 회사들까지 제주 관련 다양한 상품들을 판매하다 보니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곱지 않다.
여기까지면 그나마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여행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던 회사들이 여행 비즈니스에 속속 출사표를 던지며 여행 관련 슈퍼앱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국내 빅 커머스의 대표주자 '쿠팡'은 '쿠팡 트래블'을 필두로 배송상품을 넘어 여행예약시장까지 장악하기 위해 눈독을 들이고 있다. 상황은 티몬이나 경쟁사인 쓱닷컴도 마찬가지다.
검색 기반의 플랫폼들은 또 어떤가? 네이버는 정부의 눈치를 살피면서 '네이버 스마트플레이스'란 위치기반 예약 플랫폼을 조용히 키우고 있다. 물론 네이버가 하면 카카오도 한다. 검색이 약한 카카오는 카카오 모빌리티를 통해 이동을 통한 여행 비즈니스에 한 발 성큼 다가섰다. 카카오의 최종 목표는 모든 교통수단을 하나의 통합된 서비스로 제공하는 MaaS(Mobility as a Service) 플랫폼이다.
고객의 문 앞에서 목적지에 닿는 그 순간까지 카카오의 모든 모빌리티가 관여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의 카카오 모빌리티, 우버가 하는 것처럼 이동 중간중간 관광지, 음식점, 숙박시설 등 다양한 여행상품을 추천하겠다는 것인데... 이게 여행 관련 슈퍼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구글 또한 국내 영향력은 아직 미약하지만 구글 트래블을 통해 관광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일찌감찌 점찍은 바 있다.
결국, 수년이 지나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그랬고, 온라인 쇼핑 비즈니스가 그랬던 것처럼 2-3개의 슈퍼앱이 여행시장을 쥐락펴락할 시절이 도래할 것이다. 경쟁하는 지금이야 상품과 콘텐츠를 공급하는 프로바이더를 귀하게 모시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고객을 위해 비용을 아끼지 않겠지만 플랫폼 비즈니스의 끝. 독과점 시장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을 싹 닦을 그들이다. 높은 이용수수료와 판매수수료. 대놓고 하지는 않겠지만 다양한 형태의 강제와 갑질이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자본주의 논리이며 창의력을 발휘하게 하는 원천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냥 놔두었을 때 쏟아지는 피해는 결국 약한 고리에 떨어지게 마련이다. 죽어 나가는 사람들과 사업자들을 최소 하기 위한 장치 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혹자는 공공이 민간 영역에 침투하는 것을 백안시한다. 공공앱은 반드시 필패하게 되어 있다며 악담을 서슴지 않는 이들도 있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탐나오에 대한 비난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시장을 독점하는 기업의 반대편에서 이들을 견제하는 비즈니스도 필요하다. 대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오랫동안 제주는 관광산업 관련 자생적 플랫폼을 기대하고 소원했다. 하지만 모두가 근시안적인 태도로 '얼마나 잘하나 보자'했지 공격적인 투자와 장기적인 안목으로 플랫폼을 성장시키려고 하지는 않는 게 사실이다.
엊그제 야놀자가 제주에 지사를 설립한다는 기사가 떴다.(야놀자, 제주지사 설립..."제주 특화 서비스 강화” - 지디넷코리아). 제주 여행사들은 다시금 제주 여행산업의 고사를 이야기한다. 떠들기만 할 뿐 대안을 내놓지는 못한다. 아니 내놓을 능력이 없다는 편이 맞다. 야놀자는 한국의 여행사들이 잘 못했던 MZ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여행 콘텐츠에 집중할 모양이다. 천편일률적인 패키지 상품이 아니라 감성을 자극하는 상품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시작한 지도 오래되었고 이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것도 사실이다. 이 말은 해외 MZ세대나 국내 MZ세대나 여행사에게 요구하는 바가 비슷해졌다는 이야기일 테다.
야놀자는 아마도 인-아웃바운드를 아우르는 국내 최초의 통합 슈퍼앱이 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가 종식되고 해외 관광객이 국내로 들어오는 관문이 될 뿐 아니라 국내 고객이 해외여행을 갈 때 꼭 필요한 앱이 되겠다는 것이 그들의 포부다.
그렇다면 야놀자는 그들의 포부를 어떤 방식으로 실현시킬까? 야놀자가 투자한 제주특화 렌터카 예약 플랫폼 '제주패스'를 보면 이들이 제주 시장에서 어떻게 플레이할지 대략 짐작이 간다. 대규모 마케팅 비용을 통해 고객을 잡고 리베이트 제공을 통해 상품 콘텐츠를 장악한 후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려 들 것이다. 플랫폼 기업의 전형적인 독점 전략이다.
사실 코로나 시절을 통해 제주는 반사이익을 누렸다. 해외를 못 가니 울며 겨자 먹기로 제주에 온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최근 해외여행에 대한 증가세가 예상보다 세다. 이번 어린이날 연휴에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예상보다 작았다. 제주에 대한 관심이 특히 개별여행객들의 관심이 식어가는 듯하다. 더욱이 식어가는 제주의 관심은 해외뿐 아니라 국내 다른 지자체의 여행지로도 분산되고 있다. 다른 지역도 관광산업을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정해놓고 대규모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여행산업이 거대 플랫폼의 먹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생태계 교란이니 돈 먹는 하마니' 하는 비난보다 제주형 플랫폼을 키워 공들여 만든 콘텐츠를 공정한 가격에 팔 수 있는 시장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제주관광산업의 디지털화를 한 발 앞당기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