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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원 없이 한숨 쉬자!

너는 내 마음의 훈련사

by 퍼니제주 김철휘

20대 초반까지 나는 세 가지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책상에 앉아 공부할 때나 밥 먹을 때 다리는 떠는 것이었다. 숱하게 핀잔을 듣고 엄마에게 허벅지까지 꼬집혀도 잘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었다. 두 번째는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는 습관이었다. 예를 들어 대걸레로 바닥을 밀 때도 한 손은 바지춤에 넣고 걸레를 밀곤 했다. 친척 어른들의 훈계에도 이 역시 잘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 되어 버렸다. 마지막은 한숨을 쉬는 버릇이다. 정말이지 어렸을 때는 먼가 답답하거나 화가 날 때, 시도 때도 없이 한숨이 나왔다. 학교 선생님에게도 여러 차례 혼이 났었고 스스로도 고쳐야 할 것 같아 부단히 도 노력했지만 잘 고쳐지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가끔은 바지에 손을 꽂거나 한숨을 쉬고 다리를 떨곤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만큼은 아니다. 말하자면 습관이 고쳐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는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답은 군 생활이었다. 사실 나는 군대 자체를 싫어했다. "까라면 까"라는 그 '상명하달의 문화'가 갑갑했다. 이해할 수 없는 지시와 군 소리 없이 그 지시를 따라야 하는 군 생활은 불쾌함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누가 '군대 라테'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애초에 귀를 막는다. 그렇게 싫은 군 생활이었지만 그나마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부분이 바로 고쳐지지 않았던 세 가지 습관과의 이별이었다.



폭력으로 고쳐진 나의 버릇


때는 논산 훈련소에서 신병 교육을 받던 시절이다. 훈련이 끝나면 내무반 청소를 한다. 각자 맡은 구역을 잠자기 전까지 청소해야 하는 데, 사건이 벌어지던 날 내 담당은 대걸레였다. 여느 때처럼 걸레를 빨아 내무반 바닥을 밀고 있는 데 그 앞을 지나가던 조교가 갑자기 나를 부른다.


“128번 훈련병, OOO"


부리나케 조교 앞으로 달려가 복명 복창하고 차렷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갑자기 가슴팍으로 정권이 날아든다.


128번 훈련병, OOO


가슴 위로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와 나의 복창 소리가 내무반을 순간 적막하게 만들었다.


이 자식이 어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청소해!


문제의 발단은 주머니에 손을 넣는 바로 그 버릇 때문이었다. 공포 분위기로 휩싸인 내무반에서 한참 동안 조교의 욕이 이어졌다. 그때였다. 하필 나의 두 번째 고질병이 그 순간에 터지고 만 것이다.


흠~~


가늘고 나지막하게 한숨이 나왔던 것이다. 조교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한 듯, 1초가량 멈칫했다. 그리곤 여지없이 두 번째 정권을 내 가슴팍에 내리꽂았다.


128번 훈련병, OOO!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이 이어졌고 나는 한참 동안 얼차려를 받아야 했다. 그렇게 훈련소에서의 혹독한 신고식후 나의 버릇은 사라졌다. 아니 군 생활의 그 예외 없음과 엄중함이 내 버릇을 수면 아래로 밀어 넣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싶다.



따라 장이 또복이


©GIPHY


그렇게 잊고 있던 내 버릇 중 가장 치명적인 버릇을 요즘 또복이가 한다.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쉬는 것이다. 무엇이 답답한 걸까? 무엇에 화가 난 것일까? 안도의 한숨일까? 아니면 요즘도 가끔 내쉬는 나의 한숨을 따라 하는 것일까? 궁금하기만 하다.


알고 봤더니 보통 강아지들이 한숨을 쉬는 건 답답함보다는 오히려 ‘안심’ 혹은 ‘만족스러움’에 대한 표현이라고 한다. 보호자가 곁에 있고 반려견이 처해 있는 환경이 편안하고, 만족스러울 때 한숨을 쉰다는 것이다. 특히, 바닥에 편하게 누워 머리나 다리에 힘을 뺀 상태에서 한숨을 쉬거나 눈을 반쯤 지그시 감고 있는 상태에서 한숨을 쉰다면 정말 편안한 상태라고 보면 된다.


물론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감, 좌절감을 느낄 때도 강아지들은 한숨을 쉰다. 다만 이때는 편한 한숨과는 다르게 눈을 크게 뜬 채 , 긴장으로 몸이 경직된 상태가 된다고 한다. 다행히 또복이의 자세를 보니 편안한 상태에서 한숨을 쉬는 듯하다.



강아지들은 우리의 마음을 읽고 따라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어떤 개들은 편안한 상태,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가 아닌데도 한숨을 쉰다고 한다. 말하자면 사람이 한숨을 쉴 때 그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카멜레온' 같은 강아지가 있다는 말이다.


사실 감정은 사람끼리도 전염이 된다. 이는 인간의 뇌 속에 있는 '거울 신경세포'의 작용이다.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는 다른 이의 음성 패턴이나 태도 등을 무의식 중에 모방하는 세포를 말한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부모님의 행동과 언어, 심지어 표정까지도 따라 한다고 한다.


'상대방의 행동을 모방하는 재주'라는 관점에서 보면 인간 못지않게 강아지들 또한 모방에 능하다. 결국 또복이가 한숨 쉬는 것은 편안한 상태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일 수도 있고 나의 한숨을 따라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한숨 쉬는 게 나쁜 건 아니야


어릴 적부터 우린 한숨 쉬면 복 나간다고 숱하게 들어왔다. 그렇지만 한숨은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고 한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면 몸이 이완되면서 긴장이 풀린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은 심리적인 원인이 아니더라도 폐의 기능을 건강하기 유지하기 위해 5분마다 무의식적으로 한숨을 쉬고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한숨은 부정적인 습관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육체 건강과 정신건강을 위해서 습관적으로 해야 했던 행위였던 것.


"또복아~ 이제 마음껏 한숨 숴! 나도 대놓고 한숨 쉴 거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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