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번의 크리스마스와 12000일

늘 처음 같은 마음으로.

by Funny Sunny

지난주와 이번 주, 딸을 데리러 동부에 다녀왔다.
그 일정 사이에 작은 날짜 하나가 끼어 있었다.
아내와 처음 만난 지 12,000일이 되는 날.
생각해보니 우리는 벌써 서른세 번의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있었다.

그날을 그냥 지나치고 싶지는 않아, 나름의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AI로 노래를 만들어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구성해 아내에게 들려주는 것이었다.
거창한 공연도, 화려한 선물도 아니고 그저 우리가 함께 살아온 시간을 음악으로 묶어보고 싶었다.

원래 계획은 완벽한 ‘서프라이즈’였다.
하지만 플레이리스트 썸네일로 써 둔 이미지를 딸이 먼저 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아빠, 이거 작년 크리스마스 때 내가 찍은 사진으로 만든 거 아냐?
이게 왜 유튜브에 올라와 있어?”

그 순간, 모든 것이 들켰다는 걸 알았다.
깜짝 이벤트는 그렇게 끝나버렸다.

그래도 괜찮았다.
음악을 틀었을 때,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듣고 있었다.
웃고 있는 눈매였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을 듣는 게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천천히 되짚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표정을 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놀라게 하지 못해도, 감동을 증명할 필요가 없어도
그 음악이 닿았다는 건 알 수 있었으니까.

12,000일이라는 숫자보다 서른세 번의 크리스마스라는 표현이
우리에게는 더 정확한 시간의 단위인지도 모르겠다.
매년 같은 날, 같은 사람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던 날들의 합.

우리는 그렇게 또 하나의 날을 지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아마 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다.
그 평범함이, 지금은 참 고맙다.

어제 아내에게 들려준 내가 만든 음악들을 여기에 남겨둔다.
구독자인 아내도 기억하고 싶을 때 다시 꺼내 들을 수 있도록.

기억은 흐려져도, 기록은 남으니까.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n53F86vWpsbwbGQUSrGz1zXkoapHGvt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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