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엄마와 걸었던 길

by 착한임

그날은 유난히 바람이 부드러웠다.
하늘은 옅은 파스텔빛이었고, 공기에는 늦봄의 향이 묻어 있었다.
엄마와 나는 동네 공원을 천천히 걸었다.
별다를 것 없는 산책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날의 풍경을 선명히 기억한다.

엄마와 걷는 발걸음은 늘 느렸다.
나는 종종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조금만 빨리 걸으면 더 많은 걸 볼 수 있는데…’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엄마는 이미 충분히 많은 걸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작은 풀잎 사이에서 피어난 꽃, 나무 위를 스치는 바람,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 웃음소리까지.
엄마의 걸음 속에는 세상이 들어 있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간혹 내가 묻고, 엄마가 짧게 대답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같이 걷는 것만으로도, 엄마의 온기가 전해졌다.
그 온기는 말보다 오래 남았다.

그 후로 몇 달 뒤, 엄마는 병원에 오래 머물게 되었다.
걷는 일은 점점 힘들어졌고, 우리는 더 이상 그 길을 함께 걸을 수 없었다.
처음엔 그 사실이 잘 실감나지 않았다.
‘곧 나아지면, 다시 같이 걸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날은 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혼자 그 길을 다시 걸었다.
엄마와 함께 본 꽃이 다시 피어 있었고, 바람은 여전히 나무 사이를 스쳤다.
그 순간 깨달았다.
엄마가 남긴 건 기억이 아니라, 걸음이었다.
세상을 느리게 보고, 한 걸음 한 걸음 음미하는 법을 가르쳐 준 것.
그건 엄마가 내게 준 마지막이자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다.

이제 나는 혼자 걸어도, 엄마와 걷는 기분이 든다.
바람이 부드러울 때, 꽃이 필 때, 햇빛이 나를 감쌀 때면
마치 엄마가 옆에서 미소 짓는 것 같다.
그리고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한다.
“엄마, 잘 보고 있지? 오늘도 그 길을 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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