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린

by 달과 정원


1

그 아이가 나타난 것은 사월이었고, 단짝이 된 것은 오월이었다.


2

우혜린. 우 씨라니, 그런 건 뽀얗고 작은 얼굴을 가진 영화배우나 가수한테나 어울리는 줄 알았다. 누군가 우씨라는 이유로 그 아이의 별명을 ‘음매’라고 못 박았을 때 나는 웃지 않았다. 그 아이마저 까르르 웃었지만 나는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제발 린이라고 불러. ‘린’하고 부르면 말랑한 혀끝이 입천장에 가볍게 닿았다 떨어졌다. 린, 린, 린. 그건 손바닥을 벗어나 공중으로 떠오른 공깃돌처럼 가볍고 신기했다. 린, 린, 린. 익숙한 노래처럼 친근하고 재미있다. '린' 혹은 '린아' 하고 부르면 까만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며 '응' 하고 답하는 그 아이의 얼굴을 상상했다. 웃을 때면 눈동자가 숨어버리는 그런 반달 눈에 어울리는 이름. 린.

"반희야."

린은 나를 반희라고 불렀다. ‘미’라는 가운데 글자가 사라졌지만 결코 싫지 않았다.

"오잉."

"왕 졸려."

"조금만 참아."

"눈이 저절로 감겨."

"이제 오 분 남았어. 내일부터 방학이잖아."

"안 돼, 보충수업."

"나도 보충수업 진짜 싫다고."

린과 나는 두 손을 맞잡고 어깨를 훌쩍였다. 앞자리에 앉은 반장이 교과서로 얼굴을 가린 채 소리 없이 물었다. 왜? 우리는 그냥 웃었다.

이제 너희는 중학생이 아니다. 고등학생이 된 뒤 가장 많이 들었던 말. 그리 새롭지도 두근거리지도 않았다. 중학교 입학식을 하던 날에도 이제 너희는 초등학생이 아니라는 말을 열 번도 넘게 들었으니까. 알 수 없는 건 누구도 너희는 이제 고등학생이다, 이렇게 말해주지 않는다는 거다. 아니라는 말은 누구에게든 무겁다.

“나 예전에 엄청나게 큰 에어컨만 만들면 길거리에도 냉방이 되는 줄 알았다.”

“우가네 왕 에어컨. 온 세상을 시원~하게.”

“크, 달나라도 갔다는데 왜 그런 건 안 만들까?”

“네가 만들어봐.”

“헉, 나 과학 C반이다.”

“큭, 난 A반인데 그럼 내가 만들어 줄까?”

“그거 자랑질인가?”

“하지만 영어는 B반 수학은 C반이라는 현실.”

“으, 난 그 반대.”

하얀색 실험 가운을 입고 검정 뿔테 안경을 쓴 린은 분명히 멋질 거다. 어쩌면 노벨 과학상 후보에 오를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린의 고등학교 시절에 대해 들려달라는 기자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거다. 깜짝 놀라실 거예요. 린은 보충수업 때 과학 C반이었답니다. 믿기지 않으신다고요? 그래도 사실인 걸요. 전 린이 고등학생 때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지켜봤으니까요. 살짝 웃음이 났다. 이런 유치한 상상이라니, 나는 힐끔 린을 곁눈질했다. 이마에 맺힌 작은 땀방울이 떨어질 듯 말듯 매달린 린의 얼굴. 귀엽다.

"린아, 우리 보충수업 끝나면 비치 월드 가자."

"비치 월드? 나 완전 좋아서 춤출 거야."

"그건 사양일세."

"으응."

“어디서 앙탈이야! 보충수업 끝나고 가자.”

순간 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으앙, 몰라. 보충수업 끝나고 바로 할머니 댁 가야 해."

"공부한다고 뻥치시오."

"할머니 구순잔친데?"

늘 이런 식이었다. 할머니 생신이거나 큰집이 이사했다거나, 가끔은 이유 없이 온 가족이 모여 밥을 먹기 때문에 린을 만날 수가 없었다.

“20, 21, 22일 이렇게 할머니한테 갔다 와서 23일에 가는 건 어때?”

"잔치를 삼 일이나 해?"

"휴가 겸해서 다 모인대. 왜 그렇게 모이는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니까."

툴툴거리는 말투였지만 린의 얼굴은 즐거워 보였다. 같이 가자고 하면 망설임 없이 그러겠다고 대답할 텐데. 린은 무심하게 휴대전화를 꺼내 잠깐 들여다보는가 싶더니 곧 내게 보여주었다. 23이라는 숫자 아래서 선명히 빛나는 빨간색 하트와 비치 월드라는 네 글자 . 바로 옆 칸에는 개학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3

새로운 것의 한계는 곧 익숙해진다는 데 있다. 또래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모습으로 수업마다 교실을 찾아다니는 서양 아이들. 미국 하이틴 로맨스 영화를 볼 때마다 그게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저랬으면 좋겠어. 막상 수준별 보충수업이 시작되자 그게 멋진 게 아니라 귀찮은 일임을 깨달았다. A반의 우월함과 C반의 열등감, B반의 밋밋함에 모두 폭발할 것 같았다. 꽝. 정말 폭발한다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다. 지구를 없애고도 남을 만큼 우리는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럼 영화 속 그 얘들에게 진짜 부러운 건 뭐였을까. 학교 복도에 늘어선 개인 사물함, 붉은 머리카락도 괜찮고 립스틱을 바르기 위해 어린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어도 괜찮은, 그런 건가.

보충수업 전날 엄마는 수준별 반 배정 통지서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국어 B반, 영어 B반, 수학 C반, 과학 A반.

'수학이'

"수학이 이게 뭐니?"

'넌 왜 이래'

“과학을 잘하면 수학도 잘한다는데 넌 왜 이래?”

'따라 하지 말라고.'

"저 봐라. 엄마가 얘기하는데 눈동자 풀린 것 좀 봐. 엉뚱한 생각하지 말고 방학 때 바짝 하라고. 이번 방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너도 알지? 네 인생이 어떻게 풀리느냐는 이번 방학에 달린 거야."

‘린이랑 같이 듣는 수업이 하나도 없잖아. 더운데 참 비극적이다.’

나의 비극적인 현실에 대해 엄마는 이렇게 평할 게 틀림없다. 그래서 걔가 너 대학에 붙여준대? 다 자기 코가 석 자야. 엄마는 모르는 게 참 많다.

"그런데 보충수업 그거 꼭 해야 하니? 엄마가 끝내주는 학원 다 알아놨는데... 담임한테 살짝 말해볼까?"

언제부턴가 엄마는 끝내주는 엄마가 됐다. 끝내주는 학원을 알아냈고, 끝내주는 총명탕을 찾아냈고, 전국 석차 30%에 드는 끝내주는 비법을 배워왔다. 전교 10%에도 못 드는 내게 전국구로 뛰라는 건 뭔가. 정말 끝내주는 엄마다.

"끝나고 가면 되잖아. 전화하기만 해봐. 콱..."

"콱 뭐?"

"나 인강 볼 거니까 나가."


4

린은 절망적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참 덥다, 그지?”

“응. 지친다.”

“각오도 하고 예상도 했는데 이렇게 일찍 아웃될 줄은 몰랐어.”

“아웃?”

“보충수업 잘 견뎌내기 프로젝트가 실패했다는 거지.”

“그런 걸 했단 말이지, 나 몰래.”

“누구나 비밀은 있다.”

“우혜린, 뭐야? 난 그런 거 안 키워.”

비밀이라는 말에 새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비밀이라는 걸 만들어 본 적이 없다. 린에게만큼은 어설픈 숨기기로 나를 감추고 싶지 않았다. 결국, 린은 나와 달랐던 건가.

“뭔 말을 못해요. 그냥 그렇다고. 비밀은 무슨 얼어 죽을 비밀이야.”

“네 눈동자에 거짓이 있다.”

“그 말 멋지다. 네 눈동자에 거짓이 있다아.”

그렇게 우스갯소리로 상황이 정리해버리는 건 린의 특기. 처음엔 놀라웠고 그다음엔 재밌었고 그다음엔 안타까웠다. 그건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고, 나는 그 이상을 물어보는 일 따윈 하지 않았다.

“반희야, 이제 얼마나 남았지?”

“아주 많이. 일주일밖에 안 지났는데.”

“음, 좋았어. 불타는 신념과 거친 야성으로 이 난관을 이겨내겠어. 크하하하.”

그때 린은 결코 슬퍼 보이지 않았다. 화가 났다거나 거짓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알던 린일 뿐이었다.

보충수업을 하는 동안 여름은 더욱 강렬해졌다. 교실 천장에 달아놓은 에어컨이 전시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나는 미리 에어컨 바람을 온몸에 심어두기로 한 것처럼 거실 에어컨을 마구 틀어댔다. 며칠 뒤 거실에서 에어컨 리모컨이 사라졌다. 소파 밑까지 샅샅이 뒤져본 나는 식탁 의자를 끌고 왔다. 의자에 올라서서 아무리 손을 뻗어도 천장에 달라붙은 전원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땀으로 목덜미가 따끔거렸다. 십 분 가까이 씨름을 하던 나는 의자에 선 채로 울었다. 울면서 이런 게 설움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날 처음으로 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화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삼 일을 꼬박 앓았고, 보충수업은 끝이 났다.


5

린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할머니 댁에 도착했다는 것과 심심하다는 전화를 끝으로 더는 통화를 할 수 없었다.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불안감에 화장실에 갈 때도 휴대전화를 들고 갔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잊었을까. 내일이 방학 마지막 날이라는 걸, 우리가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라는 걸.

띠링.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지르며 돌아누웠다. 띠리링. 야광 시계가 열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일어나서 확인하라는 신호와 베개 아래로 고개를 처박고 계속 자라는 신호가 동시에 울렸다. 띠링. 아, 씨.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드디어내일아니오늘이다오바^^]

린이었다. 잊지 않았다. 힘없이 늘어지던 눈꺼풀이 팽팽해지고 문자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불어터질때까지놀아보자오바^^^^]

답장은 오지 않았지만 나는 금세 깊은 잠에 빠졌다.


6

잠에서 깨 눈을 뜨는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그 순간 하루가 결정된다. 웬일인지 방학 내내 시달렸던 꿈을 꾸지 않았다. 오 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한 문제도 풀지 못한 시험지를 들고 덜덜 떨며 눈물 콧물 다 쏟아내는 끔찍함. 무섭고 두렵고 참담한 기분이 꿈을 꾸는 동안에도 가슴을 후벼 팠다. 꿈속에서 헤매지 않고 맞는 아침이 이렇게 달콤하다니. 깃털처럼 가벼워 훅하고 날아오를 만큼 상큼했다. 머리를 감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입술에 박혀 있는 듯 자동 재생되는 노래. 그 노래를 처음 들었던 날 린과 나는 단짝이 됐다.

'힘들면 잠시 쉬었다 오는 거지. 걱정하지 마. 거기서 기다릴게.

바쁘면 먼저 달려도 문제없지. 걱정하지 마. 거기서 기다릴게.'

린은 이어폰 한쪽을 건네주곤 이전 곡 재생 버튼을 열 번이나 눌렀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농담처럼 말했다. 거기서 기다릴게. 거기가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거기라는 곳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믿음과 네가 날 무작정 기다려줄 거라는 안도감. 나는 울고 싶을 때면 그 노래를 들었다. 린, 거기서 기다릴게. 정말 기다릴게, 꼭. 하지만 린은 오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약속장소에서 한 시간 삼십 분을 기다렸다. 아침을 먹지 못한 배가 꼬르륵 소리를 내질렀다. 다시 휴대전화를 꺼냈지만, 이번에도 받지 않았다. 상대가 린이라 해도 두 시간은 너무 길었다.

드드드 드드드. 린의 전화번호가 떴다.

“이 시추에이션은 무엇인가?”

“미희 누나, 나 정명이야.”

“어?”

“누나가, 다쳤어.”

“뭐?”

“다쳤다고.”

“왜?”

“…….”

“왜냐고?”

“누나가, 누나가…… 흐흑.”

린의 동생은 아이처럼 울었다.

린이 탄 버스가 거북이처럼 뒤집어지고, 지하철이 불길에 휩싸이고, 커다란 화물차가 타박타박 걷던 린에게 돌진하는 모습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는 어느새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지하도에 들어선 린의 입을 막는 검은 장갑과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린의 교복 치마가 펄럭였다. 그만해. 미쳤다. 나는 미쳤어. 이따위 상상을 하다니 미쳤다.

린의 동네 역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온몸이 땡땡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 있었다. 두 손에 묻었던 얼굴을 들고서야 내가 앉은 곳이 노약자 좌석인 걸 알았다. 내 앞에 선 백발의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열두 정거장을 지나는 동안 미친 듯이 울고 있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시 한 번 건물 출입문 초인종을 눌렀지만 대꾸가 없었다. 린의 집을 잘못 찾은 건 아닌지 헷갈렸다. 그러고 보니 린이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았다. 이런, 바보. 린은 벌써 병원으로 옮겨졌을 텐데.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다행이다. 병원에는 의사도 간호사도 많으니까 수술도 받고 주사도 맞고 약도 먹을 수 있다. 갑자기 불끈 힘이 솟았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린을 보러 가자. 내가 늦어도 거기서 기다릴 거잖아.

“칠 층서 떨어졌는데 살 수가 있나.”

뒤돌아서는 순간 숯불갈비라고 쓴 앞치마를 두른 아줌마 부르르 떨며 소리쳤다. 야쿠르트 수레를 세워둔 아줌마가 손 모자를 하고 건물을 올려다봤다. 나는 건물 뒤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린의 방 창문이 나 있는 골목 바닥에 검게 말라붙은 핏자국. 사시나무처럼 떨린다는 게 바로 이런 건가 보다. 온몸이 마구 흔들렸다. 나는 린의 창문을 올려다봤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창문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냥 다리가 부러졌거나 운이 나쁘면 머리가 깨진 정도일 거다. 그러면 저 피는 뭔데. 몰라. 저런 피 따윈 난 몰라.

드드드 드드드.

“반희 누나.”

정명이었다.


7

린은 지하 일 층에 누워 있었다.

“아이고, 반희야. 우리 혜린이 좀 살려봐라, 우리 혜린이 좀…….”

린의 엄마는 맨발이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쏟아내는 엄마의 발바닥이 새카맣다. 린의 아빠는 아무런 말없이 나를 린이 누워있는 방으로 밀어 넣었다. 겁이 났다. 쾅하고 문을 닫아버리는 건 아니겠지. 나만 남겨놓고 모두 나가버릴까 봐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끼익, 슥. 하얀 가운을 입은 아저씨가 작은 철제문을 열고 린을 끄집어냈다. 세상에 저렇게 좁고 어두운 곳에 린을 두다니. 아저씨가 새하얀 천을 거둬내자 린의 작고 귀여운 얼굴이 보였다. 아, 린! 정말 네가 정말 네가 죽어버렸구나. 너는 어쩌자고 그렇게 두 눈을 감고 있는 거니. 내 뒤에 서 있던 정명이 작게 흐느꼈다. 린의 뺨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차가웠다. 약간의 따뜻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정명아, 린이 그냥 자는 거 아닐까? 린이 잘 때 꼭 이런 표정이잖아.”

정명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말라붙은 검붉은 핏자국이 떠올랐다. 나는 린의 머리를 꼼꼼히 살펴봤다. 어디에도 핏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나의 시선을 알아차린 하얀 가운의 아저씨가 천으로 린을 덮어버렸다. 다 꿈이야. 맞아. 그런데 무슨 꿈이 이렇게나 길까. 이렇게 긴 꿈은 깨어나면 잊어버리기 일쑨데. 차라리 잊어버리는 게 더 낫겠다.

“나도 모르겠어. 밥 먹으라고 했는데도 대답이 없어서 들어가니까 안 보이잖아. 그런데 방충망이 열려 있더라고.”

“린이 모기한테 물리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방충망을 닫고 돌아서려는데…… 누나가 땅에…….”

처음엔 실수로 창문에서 떨어진 줄 알았다고 했다.

“뒤로 뛰어내렸어. 그래서 살 수가 없었대.”

“무슨 말이야, 뛰어내렸다니?”

“실수로 떨어진 게 아니라 뛰어내렸다고, 자살했다고. 미안하다고 편지까지 써놓고 뛰어내렸단 말이야. 자살했다고 지가 뛰어내렸다고!”

너는 지금 뭐라는 거니, 왜 엉뚱한 소리만 지껄이는 거지. 린이 동생 때문에 툴툴거릴 때마다 재미있어 웃곤 했는데 이제 보니 영 이상한 애잖아.

“반미희.”

반장이다. 퉁퉁 부은 눈으로 휴대전화를 꼭 쥐고 있는 건 분명히 반장이었다. 넌 왜 여기 있는 거야? 반장은 울먹이면서도 문자 보내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선생님은 아직 애들한테 알리지 말라고 했는데 그럼 혜린이가 너무 쓸쓸할 것 같아서 몇 명한테만 문자 보냈어. 미희야, 이제 우리 어떡해?”

우리. 린과 나를 묶는 휘파람처럼 듣기 좋은 말. 그 말이 지금은 반장과 나, 반장과 나와 반 아이들, 일 학년 사반 서른 두 명을 뜻하는 말로 변질됐다.

“넌, 어떻게 알았어?”

“뭘?”

“린이.”

“이것 봐. 혜린이가 나한테 마지막으로 문자 보내고 뛰어내렸대. 담임이 잠깐 경찰서로 오라고 해서 무슨 일인가 해서 갔더니 나한테 문자 보내고…….”

휴대전화 액정에 활짝 웃는 이모티콘이 나타났다.

일요일의 이른 아침. 모두가 이불 속에서 늦잠을 청하고 있을 때 린은 창문에 걸터앉아 마지막 문자를 보냈다. 그리곤 휴대전화를 고이 가슴에 안고 아래도 떨어져 내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잘해줄 걸. 혜린이가 날 이렇게 가깝게 생각하는 줄은 정말 몰랐어. 나 벌 받을 거야. 더 잘해줄 걸.”

내 가슴 위로 쓰러져 우는 반장의 뒤통수를 후려갈겨 주고 싶었다. 린이 죽기 직전에 보낸 문자가 반장을 위한 거였다. 활짝 웃는 이모티콘. 자기가 죽고 없어도 잘 살라는 뜻이니, 죽는 게 웃긴다는 뜻이니. 나는 린이 죽은 이유보다 왜 반장인지가 더 궁금했다. 그렇게 죽어버릴 거면서 약속은 왜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린이, 린이 나를, 죽음을 결심한 그 순간 나를 완전히 지워버렸다. 린, 왜인지 알고 싶어.

반 아이들이 한두 명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적막하던 장례식장에 이상한 활력이 스며들었다.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열일곱 살 여고생들이 넘쳐났다. 울음소리 사이로 높고 가는 속삭임이 묻어났다. 속닥속닥. 담임은 비통한 모습으로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무어라 말을 건네고 어깨를 두어 번 다독여주었다. 갑자기 얌전하고 성실해진 아이들은 담임의 말에 연방 고개를 끄덕이곤 조용히 장례식장을 빠져나갔다. 몇 몇은 내게 붉게 물든 눈을 깜빡이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미희야, 어떡해? 어떡해야 하는지 내가 어떻게 아니. 그걸 알면 얼마나 좋겠어.

오후 두 시. 국과 밥이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았다. 울음을 그친 반장은 꾸역꾸역 국물을 떠먹었다. 린의 친척으로 보이는 이들과 누군지 모르는 어른들이 들이닥쳤다. 장례식장은 또다시 날카로운 울음으로 소란스러워졌다. 마치 어두운 바닷속으로 자꾸만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더 가라앉아야 두 발로 딛고 설 수 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미희 누나.”

“아, 정명아.”

껑충 큰 키지만 초등학생처럼 어려 보이는 얼굴이 린을 많이 닮았다. 정명은 자꾸만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는 그런 정명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그거 편지, 뭐라고 쓰여 있었어?”

“…… 미안하다고.”

“그리고.”

“없어.”

“…… 너는, 그러니까 정말 미안한데, 린이가 왜, 그랬다고 생각해?”

“…… 정말 모르겠어.”

"뭔가 잘못된 것 같아. 이건 사고가 분명해. 오늘 나랑 비치월드 가기로 했거든. 어젯밤에 문자까지 보냈어. 그러니까 내 말은 사고가…….”

“자살을 하는 건 이유가 있는 거잖아. 그런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거야. 누나가 성적 때문에 비관한 것도 아니고, 집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할머니 구순잔치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 아니야?”

“정말 미치겠다. 아무 일도 없었어.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고.”

단짝인 나도 모르는 데 동생인 넌 당연히 모를 거다. 열일곱 살은 동생보다 친구에게 더 많은 걸 털어놓는 그런 나이니까.

“이건 정말 나쁜 말일 수도 있는데……. 혹시 시골에 갔다가 그러니까 안 좋은 일을 당해서 혼자 고민하다가, 그러니까 내 말은.”

“안 좋은 일이라니?”

“그러니까 혼자 산책하러 갔다가 나쁜 사람을 만나서…….”

“말도 안 돼!”

정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건너편에 앉아 있던 남자 둘이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다. 저 두 사람은 누굴까. 린의 친척일까. 린의 아빠를 아는 사람일까. 나는 마치 두 사람이 린을 죽인 범이라도 되는 냥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사람들은 한꺼번에 왔다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나는 텅 빈 장례식장에 앉아 이유를 찾아내려 애썼다. 보충수업 동안 린이 했던 말, 표정, 행동을 하나씩 떠올렸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해버려 일일이 기억하는 건 불가능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어서라도 모조리 기억하려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머리가 텅 비어갔다.

린은 성적이 오르지 않아서, 동생과 싸워서,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 빈약한 몸매가 싫어서 자주 툴툴거렸다. 그 정도도 툴툴거리지 않는 열일곱 살은 없다. 정작 뛰어내릴 사람을 정해야 한다면 린이 아니라 내가 더 많은 이유를 가졌다. 성적으로 증명해도 내 공부머리를 인정하지 않는 엄마가 있다.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사람,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생과 말을 섞는 일 따윈 없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나도 이렇게 살아있다. 린이 그럴 이유는 없다. 내가 아는 한에서는.


8

정명은 린의 휴대전화를 순순히 건네주었다.

1번 집, 2번 엄마, 3번 정명 4번 아빠 5번 영어 6번 할머니 7번 비디오 8번 김수진 9번 최나영 10번 치킨. 린의 전화 목록은 뒤죽박죽이었다. 가족을 빼곤 아무렇게나 등록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순위를 매겨 차례대로 번호를 부여하는 나와는 달랐다. 린은 숫자로 상대의 위치를 결정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도 반미희라는 이름 앞에 붙은 숫자가 궁금했다. 28번과 29번. 반장과 나는 나란히 붙어 있었다. 린과 나는 반장을 늘 이름 대신 반장이라 불렀고 어쩔 땐 마주앉아 밥을 먹거나 매점에서 같은 빵을 사기도 했다. 같은 학원에 다닌 적도 있지만 함께 햄버거를 먹으러 가거나 팬클럽에 나란히 가입한 적은 없었다. 반이라는 첫 글자가 똑같아 내게 보낼 문자를 반장에게 잘못 보낸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깨끗하게 세탁된 교복을 입고 창틀에 앉은 린은 무슨 말을 남겨야 할지 고민했을까. 떨고 있는 린의 야윈 등이 어른거렸다. 고민하지 말지. 적어도 그런 고민은 하지 않았으리라 믿고 싶었다.


9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선택했다. 칠 층에 도착하자 숨이 무척 가빴다. 린의 집 현관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누군가 집에 있으면 뭐라고 말해야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린의 방을 보여 달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차라리 정명이 심부름을 왔다고 하자. 여기까지 생각하는 동안 나는 이미 거실에 들어서 있었다.

거실 창으로 들어온 햇볕으로 집안은 후끈거렸다. 등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식탁에 차려놓은 음식 냄새를 맡자 허기가 몰려들었다. 뭔가 먹고 싶다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 린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언제가 와본 적이 있는 그 방은 린처럼 작고 소박했다. 일인용 침대와 책상, 스탠드가 내 방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굳게 닫힌 방충망 앞에 섰다. 겁에 질린 숨소리가 들려왔다. 두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방충망을 여는 손이 더 떨렸다. 삑삑거리며 방충망이 열리자 린이 남긴 흔적이 선명하게 보였다. 의자를 끌어와 올라서서 창틀 너머로 고개를 길게 뺐다. 이상하게 바닥과 창문 사이가 높아 보이지 않았다. 이십 층 정도는 돼야 가능한 줄 알았는데, 린은 이 정도 높이에서도 죽을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안경을 쓰고 빗속을 걸을 때처럼 앞이 보이질 않았다. 서러움이 밀려와 가슴이 쪼그라들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아 한쪽 무릎을 창틀에 올려놓았다. 어지러웠다. 린이 방긋 웃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아래를 향해 미끄러지고, 온통 붉은 피. 린의 흔적은 어느 때가 되면 완전히 사라지리라. 그렇게 린은 세상에서 영원히 소멸한다. 없는 게 된다. 린이, 없는 사람이 된다. 나만 두고 그러지 마. 린, 부탁이야.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린의 침대에 기대 있던 나는 밖이 깜깜해진 걸 깨달았다. 손가락을 움직일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을 일으키기가 너무 힘들었다. 어둠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저곳에 앉아 늦은 시간까지 수학문제를 풀며 한숨을 쉬었을 린을 떠올렸다. 우리는 책상에 코를 박고 있는 짬짬이 서로에게 욕이 섞인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수학을 배우게 한 사람을 박제해 버리고 싶다든가,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될 수 있는 조금 끔찍하고 잔인한 방법을 모의하기도 했다.

나는 깨끗하게 정리된 린의 책상에 앉아보았다. 빼곡히 꽂혀 있는 문제집과 참고서. 린의 장례식이 끝나면 모조리 불태워질 것이다. 어쩌면 린의 엄마가 내게 줄지도 모른다. 그것이 린의 물건임을 엄마가 안다면 고래고래 악을 쓸 테지만. 죽은 애 걸 뭐 하려고 집에 들여. 정신 나갔어 하고.

그때 문득 린의 수첩이 생각났다. 잊고 있었다. 린이 매일 수첩에 무엇인가 적어댔다는 걸.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고 전의 같은 게 솟구쳤다. 수첩만 찾으면 비밀의 문이 활짝 열린다. 나는 서랍 속을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린의 서랍은 놀랄 정도로 단순했다. 종이상자에 가득 든 생리대와 작은 앨범 한 권. 필통 몇 개와 쓰다만 연습장 몇 권이 전부였다. 수첩이 없다면 앨범일지도 모른다. 나는 앨범에 꽂인 사진을 한 장 한 장 들춰보다 반으로 잘린 사진을 찾아냈다. 잘려나간 누군가의 손을 꽉 쥐고 있는 린의 손. 사진 뒷면에는 ‘쭈니랑 린’이라고 적혀 있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린의 앳된 얼굴을 보니 중학생 때 찍은 것 같았다. 사진 반쪽은 어디에 있는 거지. 쭈니는 누구란 말인가.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마치 린이 죽은 이유가 사라진 사진 반쪽에 있기라도 한 듯 흥분했다. 상자에 든 생리대를 쏟아내자 손 때 묻은 수첩이 함께 떨어졌다. 연두색 수첩에는 초등학교 이름이 분홍색 수첩에는 중학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수첩을 뒤지는 데는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스탠드 불빛 아래 웅크린 나는 마지막으로 전화번호 목록을 열었다. 쭈니의 휴대전화 번호가 보였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리는 동안 입안이 바짝 바짝 말라갔다.

"이 번호는 결번이오니 다시 확인하고 걸어주십시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후. 도대체 뭘 상상했단 말인가. 드드드 드드드. 엄마였다. 거실 벽에 걸린 뻐꾸기시계가 열 시를 알려주었다. 나는 수첩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방을 나왔다. 뒤돌아본 린의 방은 린이 누워 있던 장례식장의 철제문 속만큼 깜깜했다. 어슴푸레 새어 들어온 가로등 불빛에 창문틀이 반짝거렸다. 현관문을 닫고 어두운 계단을 내려갔다. 쯔르륵 이상한 소리를 내며 센서 등이 켜졌다. 내 그림자가 거인처럼 커졌다가 다시 작아졌다.

나는 그렇게 영원히 린을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