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발전과 성장을 돕고 싶어
아들에게,
매주 한 번씩 네게 편지를 쓰는 게 결국 나를 돌아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얼마 전에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네 맞은편에 앉아 읽게 된 소설 작법 책에 이런 내용이 실려있었어. 작가가 직접적인 문장으로 원하는 바를 쓰지 않고 화자가 어떤 것을 어떤 눈길로 바라보는지 그 시선 자체가 저자의 의도를 보여주는 거라고 하더라. 너의 일주일을 지켜보고 함께 그 시간을 보내면서 네가 보여주는 모습은 다양하겠지. 그러나 내 기억에 남고 내가 주목한 부분을 편지에 남기게 되잖아. 그게 엄마가 네게서 보고 싶은 모습인 걸 거야. 엄마가 원하는 네 모습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거지. 그래서 그 모습들을 보고 싶어 하는 엄마의 모습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엄마가 어떤 욕망을 가졌는지 드러내게 돼. 엄마의 욕망이 네 유년을 빚어내는 데 결코 배재할 수 없는 요인이 된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
엄마가 기억하지 못하거나, 엄마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스쳐버리는 모습들은 이렇게 기록으로 남지 않지만 그런 모든 모습이 합쳐진 사람이 너인데. 엄마는 어떠한 경향성 없이 너를 바라보고 싶은데, 철저히 관찰자가 되는 게 아닌 이상 그건 쉽지 않을 것 같아. 자식을 향한 사랑이 이렇게 끓는데 냉정한 관찰자로서의 선을 넘지 않는 게 어떻게 어렵지 않겠어. 그걸 잘해야 좋은 부모가 될 수 있겠는데 말이지. 부모 노릇이라는 참말로 중차대한 임무를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엄마는 늘 궁리 중이야.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이게 정말 쉽지 않더라고.
어젠 유치원에 가서 상담시간을 가졌어.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너는 여느 어린이처럼 자기만의 속도로 잘 자라고 있더구나. 이제 신체활동도 많이 늘어서 날다람쥐들 사이에서 그래도 좀 느린 다람쥐 정도는 되었어. 순식간에 나무에 오르는 다람쥐들과는 달리 너는 팔랑팔랑 날아다니던 나비였는데, 많이 따라잡은 셈이지. 속도에서 밀릴 게 뻔하니 함께 놀고 싶어 하지 않던 자신 없는 모습은 이제 점차 없어지고 스스럼없이 함께 뛰어다니며 논다지.
여전히 원치 않는 양보를 많이 하지만, 그래도 네가 무언가 싫을 때는 네 의사를 잘 밝히기도 하고. 네가 많이 참는 스타일이긴 해. 너는 감정 표현에 소극적이라고 하시더라. 엄마는 의아했지. 집에서는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 말씀이 맞는 거야. 네가 울 때 큰 소리로 엉엉 우는 걸 본 기억이 없더라고. 얼굴을 베개에 박고 끅끅 소리 죽여 울거나, 입을 다문 채 눈물만 주르륵 흘리거나 했지. 그래도 즐거운 감정 표현은 나름대로 하는데. 긍정부정을 다 아우르는 감정표현을 좀 더 장려해야 할 것 같아. 네가 눈물이 많은 게 걱정되어 엄마가 그 눈물을 다 받아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까 봐서 네 눈물에 무심 또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는데, 그게 원인이었을까? 엄마는 생각이 점점 많아졌지. 그래서 네가 꾹꾹 눌러 참다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돌파하는 순간에 펑 터져버리는 걸까? 이렇게 적고 보니 누구와 너무 닮아있지 않아? 바로 나. 엄마가 이런 스타일이거든. 그게 별로 좋지 않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는데, 네가 너무 비슷한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더라.
네 안에 무언가가 그렇게 쌓이기 전에, 폭발할 근거가 쌓이기 전에 차분히 해소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초반에 차분하고 확실한 거절을 하는 연습을 시작해야겠어.
내 눈에 낀 필터를 빼고 너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네 발전과 성장을 돕고 싶어.
앞으로도 애써볼게.
늘 사랑해.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