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살짝 열고

흘려보내는 것일지도

by 내복과 털양말

나는 언사가 그리 아름다운 사람은 아니다. 밥상머리에서 개새끼 소새끼 등등 각종 새끼들을 들으며 자랐다. 내가 그 대상은 아니었다. 병신, 등신, 깜둥이 같은 소리도 들을 만큼 들으며 컸다. 욕의 시작은 아버지였으며, 재빨리 습득한 것은 오빠, 말리는 듯 말했지만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던 엄마가 있었다. 아무에게나 쌍욕을 던져대는(면전에 던지는 게 아니라 신문이나 뉴스를 보고 하는 욕이다) 아버지를 보고 나는 그때부터 저 소리 좀 안 듣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바랐다. 아버지는 지역차별주의자였고, 오빠는 그걸로는 모자란다는 듯 인종차별주의자의 색깔을 스스로 덧입혔다. 경상도의 강한 억양으로 뱉어대는 욕이 진절머리 났다.

욕의 대상이 되는 이들을 하필 나는 소중하게 여겼다. 내 친구들은 약소국의 사람이거나, 흑인이거나, 전라도 사람이거나, 고양이였다. 나는 그 욕을 내게 던지는 것임을 알았다. 대놓고 그런 애들과 어울린다며 비난받은 적도 있고, 나 들으라는 듯 국내외를 불문하고 특정 지역 사람들을 비웃기도 했다. 오빠라는 인간은 군대에서 고양이를 학대한 이야기를 뻐기듯 뱉어냈다. 역겨웠다. 그 지점에서 아무런 언급도 없이 밥을 입으로 밀어 넣던 부모는 더 역겨웠다.

자주 나를 탓했다. 대체 왜 약한 것들을 그리 사랑하는지. 시 따위가 이 세상에 왜 필요하냐는 말에 멋들어지게 대응하지 못하고 나는 그저 조용히 책상에 쌓인 시집을 펼치는 사람이었다. 세월이 쌓이고, 내게 소중한 것들을 무시하는 것이 곧 나를 무시하는 것이라는 등식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내게 소중한 존재, 즉 나의 일부라면 그들이 무시할 것이라는 등식도 생겨났다. 욕을 잔뜩 얹은 조롱의 대상이 될 거라고.

그 진절머리 나는 욕이 내 안에 남아있다. 혼자 운전할 때 몰래 욕한다. 심한 욕은 아니다. 흔한 비속어를 사용한다. 딱 내가 듣기 싫어하던 그 정도의 욕.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내 모습을 혼자 차 안에서 쏟아내고, 마치 그 욕이 길바닥에 떨어져 내게서 멀어진다고,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을 흘리면서 나를 비워낼 수 있다고 여기는 모지리처럼, 창문을 살짝 열고 달린다. 창문 밖으로 흘러나간 욕은 자연이 바람으로 쓸어 흔적조차 없애줄 것을 믿으며.


내 출신 가정의 더러움을 내 가정과 분리한다.

내 출신 가정과 내 가정 사이의 거리를 가능하면 최대한도로 벌린다.

왜 지금 이 글을 쓰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갑자기 게워낸 글을 창문 밖으로 욕을 흘려내듯 글의 홍수 속으로 흘려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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