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선에서 끊고
아들에게,
주말엔 비가 섞인 눈이 종일 내렸고, 출장에서 돌아온 네 아빠의 컨디션이 안 좋아서 내내 집에서 쉬었지. 요 며칠 엄마는 마음의 안정이랄까, 조금 편안해졌어. 우연히 보게 된 릴스였는데, 거기서 심리학박사가 나와서 결정론에 대해서 이야기하더라고. 7세 이전에 아이들의 모든 성격은 다 결정된다. 이때 받은 영향이 성격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에 영향을 끼친다는 건 요즘엔 정설로 보지 않는대. 자라면서 겪게 되는 과정이 사람의 성격과 태도를 형성하는 게 더 크다는 거야. 엄마는 내 문제로 인해서 네게 악영향을 끼치고 너를 망칠까 봐 그게 너무 무서웠거든. 아들러의 <인간이해>를 읽었을 때는 그 공포심이 어찌나 커지는지. 그런데 저 박사님의 말을 보고, 그래, 조금은 해방된 기분이었어. 내 마음의 문제를 네게 그대로 옮겨놓을까 봐 얼마나 두려웠던지. 휴.
그리고 부모의 사랑은 받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해서(예를 들면 착하게 굴어서, 공부를 잘해서) 얻어내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 엄마도 아니까. 어른이 된 뒤로도 오랫동안 인정받고 칭찬받으려 했고, 착한 자식들이 하는 행동을 자발적으로 했던 나는 네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했거든. 오늘 아침에 네게 물었지.
"부모의 사랑은 그냥 받는 거야, 무언가를 해서 얻어내는 거야?"
너는 작은 고민의 흔적도 없이 대답했어.
"그냥 받는 거지!"
아아, 너는 내게 큰 안정감을 주었어. 엄마는 아직도 예전의 나를 벗어나지 못하고 네게 확인받으려 하고, 대답을 듣고 안심하려 하잖아. 말하자면 난 네게도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으려 하지.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받아보지 못한 형태의 사랑을 주려고 발버둥 치고 속으로 아우성치고 울고 했던 노력이 효과가 조금은 있었다는 걸 네 대답에서 느끼니까 오늘 엄마는 오히려 울컥해지더라. 상처의 고리를 내 선에서 끊고 네게 조금은 나은 형태의 사랑을 전달하는 데 성공(이라면 너무 거창하네, 그 비슷한 걸)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이제 엄마는 네게 잔소리하는 것만 좀 더 줄이는 데 집중할게.
엄만 네 존재 덕분에 더 나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어. 조금씩 치유되고 있어.
너는 이 세상이 내게 준 선물이야.
사랑해.
네가 놀던 아이링고 블록 손도 안 데고 그대로 놔뒀어.
이따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바로 이어서 만들자!
이따 만나.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