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너를 깊이
아들에게,
방학이 시작됐어. 밖에 나가면 퍼지는 입김도, 잡을 땐 차갑다가 집에 도착할 때쯤에 따뜻해지는 우리의 손도 이 계절을 즐기고 있구나. 바깥의 냉기에 빠져있다가 집에 들어오면 훅 끼치는 온기가 매일매일의 작은 행복이지. 이 편지도 이제 2025년의 마지막 편지네. 크리스마스 선물로 엄마가 고른 휴대용 현미경을 너무 좋아해서 기뻐. 아무거나 다 들여다보면서 신기해하는 모습이 얼마나 엄마를 흐뭇하게 하는지 넌 모르겠지. 엄마는 속으로 으하하하 웃으며 한 건 했다! 외쳤잖아. 네가 갖고 싶던 장난감보다 현미경이 더 재미있다는데 안 그러게 생겼니.
엄마는 며칠 전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달력에 작은 스티커를 하나 붙였어. 그날은 네가 자발적으로 양치를 한 날이었지. 너는 아직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아. 네가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할 때마다 엄마가 작은 스티커를 하나씩 달력에 붙이려고. 나중에 그걸 눈치채고 네가 물으면 그때 가서야 엄마는 대답해 줄 거야. 네 반응은 예상되지 않지만, 어떤 방향으로든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으면 좋겠어. 내가 지켜보는 너는 많은 성장을 했어. 유치원에 다녀오면 수건을 빨래통에 넣고 텀블러를 싱크대에 넣지. 책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설거지를 한다거나, 내일 아침 가방을 미리 챙겨놓지는 않지만 엄마는 너 정도만 해도 훌륭하게 자라나는 것 같아. 너는 훌륭한 시작을 했어. 주말을 지나온 네 방은 지금 엉망진창이지만, 매일 하는 30분 간의 정리 시간을 며칠만 거치면 또 금방 잘 정리가 될 거야. 서랍마다 붙여놓은 분류에 맞춰서 네 나름의 기준으로 잘 정리하겠지. 변신로봇 서랍, 장난가암~~! 서랍, 클레이 바구니, 만들기 바구니 등 어지럽게 널린 장난감 밑으로 분류 기준이 다 있으니까. 네 방에 들어가서 내가 휘저어 놓지는 않으려고. 게다가 얼마 전부터 네가 즐거운 정리 시간을 위한 방식을 하나 찾았기 때문에 더더욱 손대지 않을 거야. 너는 흥겨운 음악을 틀어놓고 박자에 맞춰 움직이며 정리하면 정리도 신나는 일이라고 했지. 전적으로 존중해.
비록 오늘 아침에 네 입에서 "귀찮아, 아무것도 하기 싫어."라는 말이 한 서른 번은 나왔지만, 그래서 엄마는 속으로 부글부글 끓었지만, 그래도 난 네게 아무 말하지 않았어. 한참 말없이 있다가 네가 요즘 만드는 책 내용이 궁금하다고 했어. 하하, 너는 완전히 걸려들었지. 신나서 너의 <끝없는 모험> 3권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어. 유치원에서 A4지 반으로 접어서 만화를 그리고 책등 부분에는 빨간 마스킹테이프 붙여서 나름대로 책 흉내를 냈지. 벌써 3권이라니 재미있어. 너는 3권의 부제를 <공포의 나래>로 지었지. 아직 어린 네가 모든 단어를 제대로 활용하진 못하지만 네가 여기저기서 접한 단어를 활용해보려고 하는 그 자세가 엄마는 너무 좋구나. 찡찡댈 때도 많고 집에만 딱 붙어있고 싶어 할 때도 많지만 그건 뭐, 웬만한 아이들이 다 그렇겠지.
1월이 되면 태권도장에 다시 나가기로 했지. 앞으로 들어갈 너희 반이 되어 함께 생활할 아이도 이미 거기 다니고 있고, 초등학교 형누나들도 같이 안면도 트고. 운동도 운동이지만 미리 친분을 좀 다녀놓으면 좋을 것 같아서 다니던 도장을 그만뒀어.
엄마는 그저 네가 그렇게 바라는 게임기를 언제 어떻게 어떤 게임으로 시작을 끊어줄지 그게 고민이네. 게임 같은 거 안 했으면 싶을 때도 많지만, 네 또래들이 한창 즐기는 것들에 대화에 끼지 못할 만큼 차단하고 싶지도 않아서 말이야. 텔레비전 시청 시간도 평일에 한 시간씩 두 번, 주말에 한 시간씩 두 번 쓰기로 해서 우리는 그걸 영상쿠폰이라고 부르지. 엄마 아빠가 보는 프로그램을 같이 볼 때도 있지만, 너는 큰 관심을 안 가지고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 유치원에서 스마트폰 습관 잡아주라는 공지에 하루에 한 시간을 넘기지 말라고 하는데, 엄마는 네게 핸드폰을 쥐어주질 않고. 그래서 걱정이 없어. 유튜브 쿠폰은 영상쿠폰 안에 최대 15분으로 정해놓고 쓰는데, 더 보겠다고 떼쓰지도 않고 너무 기특해. 그래서 사실 엄마는 네게 닌텐도를 사줘도 게임쿠폰을 설정해서 절제하면서 쓸 거라고 생각해. 조절이 힘들면 엄마 아빠가 도와주면 되고.
무슨 일이 있든 엄마는 그저 너를 깊이 사랑해.
너무나.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