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네 세상에 등장했더구나
아들에게,
드디어 어수동 수학캠프에 다녀왔구나. 말이 "캠프"지 사실 수학으로 신나게 놀자는 행사였지. 너는 끝나고 나와서 다음에 수학캠프에 또 오고 싶다고 했지. 너무나 신나 보였는데, 저녁에 네가 한 말은 너무 예상 밖이었어.
"엄마, 사실은 거기서 나만 못난이였어. 다 틀리고, 잘 못하고."
너는 풀 죽은 모습이었지. 어쩐지 끝나고 나와서도 계속 160+176 이야기를 하더니만. 세 자릿수 덧셈도 할 줄 아는 아이는 저것도 안다며 여러 번 말했었지. 걔 말로는 그런 문제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푸는 거라던데 걔는 한다고.
"일단, 너는 못난이가 아니야. 못난이들은 수학캠프에 가지 않아. 그리고, 틀릴 수 있어. 괜찮아. 지금은 틀려도 전혀 이상할 것 없어. 세 자릿수 덧셈도 숫자를 더했을 때 단위가 올라가는 방법만 이해하면 너도 금방 할 수 있게 돼. 이해하는 순간 얼마나 빨리 그 아이를 따라잡을 수 있는지 직접 겪어보면 너도 놀랄 거야. 걱정 마. 너도 충분히 해."
너는 여전히 좀 의기소침해져 있었지.
"오늘 틀렸다고 앞으로도 계속 틀리는 거 아니고, 오늘 잘했다고 계속 잘하기만 하는 것도 아냐. 그나저나 미리 다 당겨서 배워놓으면 걔는 학교 가서 뭐 해? 수업시간이 너무 지루하지 않을까?"
너는 잠깐 생각해 보더니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른 놀이로 넘어갔어. 엄마는 아빠에게 그 아이 이야기를 해줬고 아빠는 말로만 듣던 선행학습하는 아이가 드디어 네 세상에 등장했다며 함께 오오, 크으으 같은 반응을 보였지. 딱 그 정도 반응이야. 혹시 마음에 없는데 엄마를 실망시키기 싫어서 그러나 싶어서 다시 말해보았어.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러곤 네게 수학캠프 또 하면 또 신청해 줄까 물으니 너는 또 해달라고 했지.
오늘 어린이수학동아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니 네가 표정이 그리 밝지는 않더라만, 그래도 적극적으로 손도 들고 그러는 모습을 보았어. 아이들과 잘 놀았냐고 물어보니 넌 "내가 좀 독특해 보였는지 나한테 먼저 말을 걸지 않았어." 했지. 네가 독특한가? 글쎄...... 조금 엉뚱미는 있지.
재미도 있었고, 너보다 훨씬 잘하는 아이를 직접 보고 주눅이 좀 들기도 했지만, 그래, 네 말대로 다음에 또 신청하자.
엄마 말 꼭 기억해.
틀려도 괜찮아. 재밌으면 장땡이야.
아, 그건 그렇고 오늘 아침에 클래식에프엠 방송에 문자 보낸 거 디제이가 읽어주셨잖아. 너무 신났지? 코코아교환권도 보내주신다고! 너의 동그래진 눈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몰라. 입이 쩍 벌어졌지! 와.. 엄마도 너무 기분 좋더라고.
사랑해.
네 덕분에 더 훌륭한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좋은 하루 보내자.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