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남쪽 나라

하늘을 나는 의자에 앉아

by 내복과 털양말

아들에게,


비행기라니. 새삼 놀라운 이동 수단이지. 너는 하늘을 날아가는 기계에 설치된 의자에 앉아서 구름을 내려다보았어. 우리 셋의 첫 해외여행이 시작된 거야. 우리는 얼른 짐을 부치고 라운지에서 주린 배를 채우고 탑승 대기 전에 서점을 들렀어. 너에게 전에 약속했었거든. 다음에 비행기 타고 어딜 가게 되면 엄마 눈에 마뜩지 않을 책이라도 눈 딱 감고 한 권 사준다고. 엄마도 비행기에 앉아서 뭘 읽을까 오래 고민하다가 이참에 새로 한 권 샀어. 엄마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또 읽는 걸 좋아하긴 한다만 늘 그러기만 할 수는 없잖아. 엄마도 이 기회에 올라타서 고민 끝에 한 권 골랐지. 이영도냐 김영하냐. 고민 많이 했어. 책을 사는 게 전염성이라도 있는 건지, 그 모습을 보던 네 아빠도 한 권 샀어. 셋이 쪼로로 앉아 빤빤한 새 책을 읽었지. 넌 카카오 프렌즈 자연탐사 시리즈 중 하나, 엄마는 김영하 단편선 (엄마는 대학생일 때 김영하의 단편소설을 처음 읽고 이야 이거 멋진 거로구나 감탄했더랬지), 아빠는 일리아스. 하늘에 앉아서 책을 읽는 기분이 제법 근사해.


우리는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 우리 동네는 영하 10도보다 더 내려간다는데, 우리 목적지는 영상 30도 가까이 올라간대. 우리 셋은 한겨울에 여름을 찾아가고 있어.


너는 지금 책을 다 읽은 뒤 과자를 먹으면서 나애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나쁜 계집애>를 보고 있어. 매우 집중해서 보는구나. 재미있나 보지? 문득 궁금해지네. 악으로 깡으로 내달려서 엄마 품에 안기겠다는 독기 넘치는 하니가 이길까, 모자랄 것 없는 집안에 미모까지 출중한데 계속 하니한테 지던 나애리가 이길까? 그건 모르겠지만.. 나애리의 이야기가 엄마도 궁금하긴 했어. 곁눈질을 해 창가에 앉은 네 앞의 화면을 보니 정겨운 홍두깨 선생님이 나오시네. 엄마아빠는 이야기에 푹 빠져서 입을 짝 벌리고 박수를 치거나 긴장감 폭발하는 부분에서 두 주먹을 깨물면서 보는 네가 그저 귀여워서 웃음이 터져 나와.


여행 간다고 신이 나서 그런지 엄마는 다 멋져 보여. 눈에 들어오고 귀에 들어오는 모든 게. 내일의 워터파크, 수족관, 놀이공원은 또 어떠려나? 세 식구 모두 신나 있어서 행복하구나. 맛난 거 많이 먹자.





네게 좋은 추억을 줄 수 있기를.


하늘을 나는 의자에 앉아,

엄마가.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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