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다른 말투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짓이 아니라고

by 내복과 털양말

아들에게,


우린 생각보다 훨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고, 새로운 한 주를 맞이하고 있어. 오늘부터 도서관에서 하는 <그림책 연극 놀이> 강좌를 들으러 가기 때문에 또 기대가 되는구나. 네게 물어보고 신청한 건 아니야. 동화책을 보고 그 주인공이 되어 연극놀이를 하거나 소품 만들기 활동을 한다길래 일단 먼저 신청하고 네가 관심 없어하면 취소하려고 했는데, 다행히도 네가 기대된다고 했지. 그래서 덩달아 기대가 되는구나.


너는 요즘 조금 다른 말투를 배웠어. "알아서 뭐 하게"라거나 "모르는 게 좋아" 같은 말을 하기도 하고, 아빠를 앞에 두고 엄마에게만 귓속말을 하거나, 대놓고 "그건 우리만의 비밀이야" 같은 말을 하지. 우린 집에서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않잖아. 그저 순수하기만 한 어린이였는데, 너도 나름의 사회생활을 하면서 달갑지만은 않은 영향들을 받아오는구나. 어쩔 수 없지. 너만 독야청청할 수도 없는 일이니. 엄마아빠는 네가 독야청청한 삶을 살기를 바라진 않아. 너무 힘든 삶이니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독야청청이란 말이 나온 시조를 알려줄까?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落落長松)되어서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할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s://www.kado.net)



옛날에, 조선시대에, 어린 조카의 왕위를 빼앗아서 왕위에 오른 사람이 있었어. 그 사람은 바로 세조야. 세종대왕 아들. 우리 새해 첫날에 다녀왔던 수종사 기억나? 거기가 세조가 몸이 아파서 물 좋고 산 좋은 곳으로 휴양 다니다가 들른 절이라고 했잖아. 그 세조. 저 시조를 지은 사람은 성삼문이라고 하는데, 세조의 어린 조카이자 세종대왕의 손자, 즉, 단종을 다시 왕위에 복귀시키려다가 들켜서 사형당했어. 흰 눈이 내려서 세상을 다 덮어도 자신은 드높은 산에 꿋꿋하게 서있는 한 그루 소나무로 있겠대. 홀로 서있으려면 세상 풍파 온몸으로 다 맞고 고독하겠지. 이야기가 좀 많이 나갔나? 엄마는 그저 네가 둥글둥글 기댈 어깨가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지.

그래서 네가 한 말에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그렇게 말하는 건 좋지 않아. 앞으론 하지 말자."하고 넘어갔어. 동화책 바탕으로 하는 연극놀이를 하면서 다른 사람의 입장과 감정에 푹 들어가 보면 너도 그런 말을 듣는 사람의 심정을 더 잘 느낄 수 있겠지. 그걸 노리고 등록한 강좌는 아니지만, 네가 하는 여러 활동은 다 조금씩 이어져서 네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너는 어리고, 네 감정 표현이 더 중요할 테니 앞으로도 이런저런 말을 하겠지만, 엄마는 계속 이런 식으로 반응할 것 같아. 퉁명스럽게 대하거나 소외시키는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짓이 아니라고. 넌 잘 이해할 거야. 엄마아빠도 더 모범이 되도록 할게.


넌 어제 태권도장에서 겨루기발차기를 했다고 했지. 친구도 빡 발로 차고, 너도 빡 발로 맞았다고. 그런데 무섭지 않고 짜릿했다고. 그러면서 겨루기 들어가기 전에 머릿속으로 어떻게 할지 전략도 세웠다고 했지. 그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기쁘더라. 네가 무서워하지 않아서. 즐거워해서. 엄만 행복했어. 전에는 격파가 너무 하고 싶었는데 사범님이 격파할까? 줄넘기할까? 하시더니 줄넘기를 선택하셔서 아쉬워 죽겠다고 집에 오는 길에 차 안에서 통곡했지. 어쩜 그렇게 귀여운지.


며칠 있으면 네게 주는 엄마의 선물이 도착할 거야. <긴긴밤> 큰 판형이 절판될까 봐 조바심이 나서 사버렸어. (책은 절판되면 구하기 어려워지니까,라고 중얼거리면서 이참에 엄마가 마음에 품어둔 <어떤 날, 수목원>도 샀지! 크하하. 엄마 사심을 좀 채워봤어) 나이트 사파리에서 손전등으로 코뿔소를 비춰보고 나니 더더욱 노든 생각이 나더라고.




이제 슬슬 나갈 시간이 다가오네.

신나게 하루를 살아보자고.




사랑해.

너무나.

엄마가.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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