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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복과 털양말 Jan 23. 2024

나, 살고 있구나.

선생님, 근데 자기를 사랑하는 건 뭔가요?

  한 번은 기절을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엎드려 있었다. 가슴에 뻐근한 통증이 있었고 콜록콜록 기침이 났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디딤대를 밟고 올라가 세면대에서 즐겁게 물장난하던 아들의 뒷모습이었다.

  "엄마도 나랑 같이 이거 해요."

  "엄마 잠시만."

  해맑은 아들의 목소리가 기억난다. 눈을 뜨고 본 것이 아들의 놀란 얼굴이 아니라 놀이에 푹 빠진 뒷모습이라 새삼 다행스러웠다.      


  쓰러지면서 얼굴을 여기저기 박은 모양이었다. 온 얼굴이 욱신대더니, 시간이 흐르자 흠씬 두들겨 맞은 권투선수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에겐 아이의 장난감을 밟고 넘어졌다고 했다. 정말 장난감을 밟았더라면 뒤로 넘어졌을 테지만.     


  정신과 의사는 기립성저혈압을 언급했다. 신체의 자율신경계가 오랜 기간 앓아온 우울증으로 망가져있으면 몸을 급하게 일으켰을 때 로딩이 오래 걸리는 거라고, 그건 약으로 보완할 수 없다고, 그러니 피이이잉하면서 얼굴이 지릿 지릿하게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취할 행동은 쪼그려 앉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지인의 집에 갔을 때도 장식장 앞에서 핑 도는데 쓰러지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버티다가 유리문에 이마를 박았다. 하원 후에도 어린이집에서 더 놀겠다는 아들을 데리고 모래 놀이터에서 놀다가 일어났을 때 핑 쓰러질 뻔한 걸 겨우 서서 비틀비틀 버텼다.      


  나는 오랫동안 우울을 앓았다. 어릴 때부터였는지, 대학 때부터였는지 잘 모르겠다. 잘 기억나는 건 한없이 가라앉는 느낌 정도다. 고맙게도 남편이 먼저 상담을 권해주었다. 본인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아내와 사느라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도 많았을 터다. 서울역 근처에 위층에는 정신과 의사가, 아래층에는 상담사 선생님이 계신 곳이 있다. 상담은 50분에 10만 원. 망설여질 만한 가격이었다. 그래도 등록했다. 아이를 전담하면서 수익을 창출하지 않아서 괜히 남편 앞에서 면이 안 서고, 뭔가 살 때가 되면 그에게 허락을 구할 때였지만, 나도 더는 그렇게 살기 싫었다. 차를 몰고 경의중앙선 전철을 타고, 서울로 나가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전철에서 내려서 조금 걸어가면 나오는 그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다녔다.      

  초기에 상담 선생님이 하신 말씀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는 말. 그런 건 판타지 아니었느냐고. 모두가 살기 싫은데, 좌절감에 절어있는데 그냥 죽질 못해 사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즈음 나는 북한강로를 달리며 핸들을 꺾어서 강에 뛰어들까 말까를 수시로 고민했다. 그렇지만 룸미러에는 그 순간을 막아주는 부적 같은 아들의 얼굴이 있었다. 등원시킬 때나 하원시킬 때, 엄마, 오늘은 집에 도착하면 젤리 두 개 먹고 또봇을 또 볼 거예요, 하는 아이가 내 충동을 눌러주었다. 가까스로 숨 쉬며 버티는 삶 말고, 다른 삶이 정말 있다고?


  상담이 원래 이렇게 진행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 첫 시간엔 입을 꾹 다물고 천장만 한 30분 본 것 같다. 그러다가 아무 이야기나 두서없이 쏟아냈다. 선생님, 저 자존감이라는 것 좀 만들어주세요, 난 자존감이 아예 없거든요? 그래서 키울 수가 없어요, 일단 만들어야 해요. 어떻게 만들어요? 선생님, 우린 엄마는 왜 그랬을까요? 선생님, 난 알아요, 내가 성에 차지 않는 자식이었다는 거, 언제나 2순위에 머무른다는 거요. 선생님, 근데 자기를 사랑하는 건 뭔가요? 그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가르쳐 주세요, 잘 따라 해 볼게요. 말 중간에 한숨을 쉰다던가 오열한다던가, 내 멋대로였다. 상담 선생님은 조용히 들으면서 타닥타닥 노트북에 적었다.      

  “아이를 사랑하시나요?”

  “그럼요.”

  “아이에게 해주는 것처럼 나에게도 해주세요.”

  “선생님, 아이에게 다 해주고 나면 진이 빠져서 아무것도 못해요.”

  “그럼 쉬운 것부터 하세요.”

  “저는 그저 정물처럼 놓여있고 싶어요.”

  “그렇게 하세요.”

  “해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요.”

  “무언가 해야 한다는 당위는 잊어버리세요. 가만히 앉아만 있고 싶으면 앉아만 있고, 그러다가 음악을 틀 정도의 기운이 나면 음악 듣고, 또 그러다 커피를 내릴 정도의 힘이 나면 커피를 마시며 다시 가만히 앉아만 있으세요.”     


  그래서 그렇게 했다. 그 과정에서 순간순간 쪼그려 앉아가며, 멈추지 않고 그런 시간을 가졌다. 아이의 알록달록한 장난감들로 발 디디기 어려운 마루에 앉아 멍하니 햇볕을 쬐는 시간을 가졌다. 필수적인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아이가 남긴 것 대신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었고, 그렇게 나를 먹이고 예쁜 옷 입혀주고 좋아하던 시도 읽어주었다. 물론, 처방받은 약도 빼놓치 않고 먹었다. 2년 정도 약을 먹고, 두 달 전쯤에 약을 끊었다.


  어제 침대에 눈을 감고서 내일은 뭐 할까? 생각하다가 문득 옛날이 스쳐 지나갔다. 세상에, 정말 나아졌구나. 나, 살고 있구나. 안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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