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복과 털양말로 무장하고 불을 피우자
내 내면의 집에는 난로가 있다. 마음을 다스리는 난로다. 이 난로에 넣는 장작은 나의 부정적 감정이다. 예전에는 부정적 감정에 깊이 빠져 허우적댔다. 상담이라는 막대기를 잡고 감정의 늪에서 빠져나와서는 부정적 감정들을 모아 집 안 어딘가 잘 안 보이는 곳에 처박아두었다. 그런 연습을 무진했더랬다. 나는 고통, 불안, 걱정 따위의 마음들을 처박아두는 데 제법 능숙해졌다. 한 단계 더 발전하니 그 집의 불을 끄고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했지만, 외출이 어디더냐.
그러던 내 내면의 집에 이제 난로가 생겼다. 이제는 처박아둔 걸 꺼내어 난로에 넣고 불을 지핀다. 그리고선 의식적으로, 아, 따뜻해진다, 하고 소리 내어 말해본다. 싹 태워 재로 만들어버린다. 눈길을 돌리던 시절보다 한결 더 편안한 상태가 된다. 그 얘기를 했더니 남편은 집에서 장작 때는 걸로 모자라서 마음에서도 불을 지피냐며 픽 웃는다. (당신으로 인한 감정을 넣고 태울 때도 있는데, 당신은 모르지, 속으로 말하며 나도 같이 픽 웃는다. 뭐, 어찌 됐든, 웃었으니 되었다.)
집을 보러 다니던 시절 단 하나의 전세 매물이던 이 집은 (손바닥보다는 조금 크니 발바닥 정도라고 하자) 발바닥만 한 마당에 단풍나무가 서 있었고, 서재로 쓰면 좋겠다 싶던 방에 검은색 난로가 있었다. 난로를 봤을 때 기분은, 조금 과장을 보태어 말하자면, 나니아 연대기 첫 편에서 막내가 비밀의 옷장 문을 열고 들어간 기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사 온 뒤로 거실 통창으로 장맛비를 맞는 단풍나무를 감상하며 밥을 먹으면서 아들에게 멋지지 않냐고 말하며 연신 감탄했었다. 곧 만 5세가 될 내 아들은 벌써 풍경을 감상하며 밥을 먹는, 제법 멋을 아는 어린이가 되었다. 돈벌레는 좀 나오지만, 아무래도 화장실에서 살림 차리고 대대손손 번성하는 것 같지만, 괜찮아, 주택은 원래 그렇대. 아, 모기가 많네? 마당에서 좀 놀고 들어오면 벌레 연고를 바르느라 바빴지만, 괜찮아. 주택은 원래 그렇대. 그래도 겨울이 오면 온기 퍼지는 따뜻한 서재에서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를 내겠지, 군고구마 익는 달큼한 냄새가 온 집에 퍼지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겨울도 내 기대를 조금 빗나갔다. 온기가 퍼지기도 하고, 군고구마 익는 냄새는 실로 달큼하고 유혹적이다. 그런데 그런 온기는 장작을 계속 집어넣으면서 한 7,8시간 태워야 오는 상황이다. 그 이전의 서재는 너무도 춥다. 우리 식구들은 그곳을 북극이라 부른다. 25년 묵은 오래된 주택을 너무도 몰랐던 것이다.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게 뭐냐? 하면 그건 바로 등유값이다. 집안 온도를 딱 20도로 유지했다. 실내 온도를 1도 더 높일까 고민할 땐 가슴이 다 떨렸다. 그래도 윗집 아저씨가 소변보고 물 내리는 소리도, 아랫집 아줌마가 아들이 우는 소리를 듣고 올라와 “애기 엄마, 혹시 애 때려요?” 하는 소리도 듣지 않아도 되잖아! 덜덜 떨리는 집이긴 하지만, 마음 고생보다는 몸 고생이 낫지. 나는 엘사가 아니니까, 무장해야지. 처음엔 내복이었고, 그다음엔 털양말, 그다음엔 극세사 가운. 추위 앞에서 내 맷집을 키워주는 포근한 아이템들이다.
이제 나는 내면의 집에서도 내복과 털양말을 착용한다. 전에는 그저 방을 하나를 떠올렸는데, 요즘엔 내 안의 집을 떠올릴 때 지금 집이 떠오른다. 혼자만 사는 내 집에서 나는 계절에 맞게 통창 밖의 마당을 지긋이 바라보기도 하고, 화분에서 키우는 식물도 한참을 바라보고, 능숙하게 불을 피운다. 아, 따뜻하다. 이 온기를 위해 나는 무장했다. 세상이 조금 추워도, 마음에 찬바람 좀 불어도 괜찮아. 난로가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