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인싸력과 아이의 인싸력
내가 엄마들 모임에 안 나가는 이유.
내 얘기가 아니다. 나는 엄마들 모임에 나간다. 저건 내 눈에 콕 박힌 책 제목이다.
아들은 유치원을 좋아한다. 그래서 유치원 친구의 집에도 놀러 가고 싶어 한다. 아들에게 좋은 친구가 생기면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 친구의 이름이 심상치 않다. 이름에서 신앙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그 집안의 신앙이야 내가 알 바 아니다. 그러나 내 아들에게 알게 모르게 손을 뻗는 건 내 알 바가 맞다. 그게 싫으므로. 입으로 타령하는 사람들과 나의 합이 좋지 않았다. 우린 그 집에 초대받았다.
그 집엔 들어가 시선이 제일 처음으로 닿는 위치에 “오직 예수” 어쩌고 하는 목판이 걸려있었다. 예상한 일이다. 그 엄마는 내게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궁금한 게 많았던 듯 하지만, 솔직히 대화를 이어 나가기에 심히 거슬렸다. 예를 들면, 서울에 아파트는 있지요? 고향이 어디세요? 무슨 과를 전공하셨어요? 서울에선 아파트에 사셨죠? 전원주택을 지을 의향이 있으세요? 지금 집은 전세인가요 자가인가요? 전세금은 얼마인가요? 둘째 생각은 있으세요? 없으시다고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아버님은 (정관) 수술하셨나요? 신앙생활 혹시 하시나요?
나는 거짓 없이 대답했다. 성실하게 임했다. 다만 수비형으로 임했다. 내가 주동적으로 뭔가 물어보자니 딱히 궁금한 게 없었다. 속으로 생각하긴 했다. 무슨 질문이 이런가? 상식은 신기루인가? 시간이 이렇게 느리게 갈 수 있다는 걸 아주 오랜만에 느끼면서 나는 무슨 거짓말을 하면 아들을 데리고 이 집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물론 저 질문을 쉴 새 없이 퍼부은 건 아니다. 몇 시간 동안 그 엄마와 둘이 이야기하면서 중간중간받은 질문이다. 사람은 좋아 보였다. 선의도 느껴졌다. 하지만 두 시간쯤 지나자 도저히 참을 수 없어졌다. 그때 다른 아이의 엄마와 그 가족이 도착했다. 더 시끌벅적해졌다. 나는 탈출의 기회를 놓쳤다. 둘째 이야기가 또 나왔다. 내 시어머니도 하지 않는 말을. 나는 그들에게 내 시어머니를 자랑했다. 마침내 아들의 인간관계를 위해 인내한 시간이 끝났다. 그러다 문득 저 책이 생각난 것이다. 바로 검색해서 목차를 읽어보았다.
“2장. 엄마의 인싸력과 아이의 인싸력은 별개.”
책을 읽지 않았는데 이미 위안을 받아버렸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나는 미니멀리스트다. 그래서 친구라고 부를 사람은 세 명이다. 남편, 어릴 때부터 친구, 대학 후배. 그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꽉 차오른다. 걔들이 보고 싶다.
전에 상담 시간에 선생님과 이야기하면서 나는 “아들이 외유내강형으로 자랐으면 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선생님은 “지금 모습을 보면 그럴 것도 같습니다.”라고 하셨다. 왠지 모르게 그 대화가 생각난다.
엄마들 모임이라면, 안 나갈 수도 있겠다.